“부모 빽 없어 내 인생이 힘든가 절망” “수십 곳 원서 써도 안된게 이래서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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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로 공공기관에 입사하려고 노량진에서만 2년째인데, 제가 지금까지 뭘 한 건가 싶습니다.”

고용세습 성토장 된 청와대 게시판

대학 졸업 후 서울 노량진에서 공공기관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28)씨는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 직원들의 고용세습 사태에 대해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낀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주식으로 치면 회사 직원이 내부정보를 가족에게 알려주고 이득을 취한 것 아니냐”며 “비정규직으로 쉽게 입사한 뒤 철밥통 정규직이 된 것은 부당취업”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입사시험에서 좌절할 때마다 노력과 능력이 부족했다고 자책했지만 이번 보도를 보면서 부모님이나 친인척 중에 ‘빽’이 없어서 입사가 이렇게 힘든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서울교통공사·인천공항공사 등에서 친인척 채용 논란이 확산하면서 취업준비생과 부모들의 분노가 끓고 있다. 21일 오후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용세습, 채용비리, 친인척 특혜채용 관련 글이 60여 개 이상 올라왔다. 20대 취업준비생 자녀를 둔 힘없는 부모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서울교통공사 채용에 관한 청원입니다’라는 글에서 “공사, 대기업, 중소기업 등 1년에 수십 곳 지원서를 냈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10월 초에 교통공사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며 “문제점이 드러난 이상 서울교통공사는 모든 친인척 정규직·비정규직 채용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다시 공채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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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준비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은 “은행부터 공공기관까지 신뢰성이 높아야 하는 기관들에서 채용비리가 더 심한 것 같다”며 “혈연·학연 없는 취준생들은 피눈물을 흘린다”고 성토했다. 일부 네티즌은 “몇 년간 스펙 쌓고 공부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사람이 정작 들어가서는 (쉽게 들어온 친인척 자녀들의 정규직화로) 역차별받는 세상이라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용세습 의혹은 젊은 층의 최대 관심사인 취업 문제에서 기회의 균등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분노가 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다영·임선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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