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방을 어리석다 하랴|노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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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의 한달간이나 이상 난동이 계속되더니 이젠 하루 사이에 10도 이상 기온이 떨어지는 날씨 변덕을 본다.
이 같은 기상 이변을 겪으면서 작년 여름 북미를 휩쓴 혹심한 가뭄과 가을에 일어난 방글라데시의 대홍수가 연상된다. 그리고 이런 이변들이 자연 현상의 조화가 아니라 인간들이 저지른 환경 파괴의 여파라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불현듯 나방의 행태를 떠올리게 된다.
나방은 나비 목에 속하는 곤충이다. 이 미물은 빛을 보면 덤벼드는「주광성」을 본능으로 갖는다. 불빛만 보면 나선형으로 빙빙 돌면서 접근하다가 그 빛이 타오르는 불꽃일 경우 결국 타 죽게 된다. 이 곤충은 빛을 못 보도록 눈에 검은 칠을 해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몸 전체에 빛을 감지하는 특별한 감각 기관이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이 같은 미물에 비유하자니 떨떠름한 감도 없진 않으나 양보할 생각은 없다.
인간들은 인구의 증가에 따라 늘어나는 식량과 물자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생산에 몰두해왔다. 산업은 또 생산의 극대화를 위한 과학화가 불가피했고 급기야는 무한대에 가까운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룩했다. 우리의 일상 생활이 최근 수년 또는 십여년 사이에 얼마나 급격히 편리하고 풍족해졌는가.
과학화 자체를 못마땅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초래한 자연 본래의 오묘한 조화와 균형의 파괴는 과학이 가져온 편의 이상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생활의 풍요와 편의는 엄청난 에너지의 소모에 의해 얻어진다. 지난 65년부터 20년 동안 세계 인구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60%이상이나 증가했다. 그중 대부분을 점하는 석유·석탄 등 화석 연료는 이산화탄소나 질소산화물 등 유독 가스를 쓰레기로 남긴다. 이 유독 가스들은 우리 육체 내에 흡수 돼 건강을 해친다.
서울에 내린 빗물의 산성도가 기준치의 1백 배를 넘어섰다는 최근 조사 보고는 충격적이다. 그만큼 물과 토양을 오염시켜 우리의 건강과 자연을 해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대기 오염뿐만 아니라 농토 확장이나 집을 짓기 위한 개발까지를 합치면 1년에 일본 열도 넓이의 삼림이 지상에서 없어져가고 있다. 앞으로 20년쯤 지나면 지구상의 열대림이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 대기 자체가 산소 부족 현상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인간에 의한 이러한 자연 질서의 파괴는 이미 여러 가지 기상 이변을 초래함으로써 우리에게 재난의 경고를 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1세기 동안 지구 표면 온도는 0·7도가 상승했다. 작년에 지구 기온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서기 2050년에는 지구 온도가 현재보다 8도 가량 (적도 기준) 상승한다고 환경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기상 이변이나 지구 온도의 지속적인 상승 현상은 화석 연료의 과다 사용이 초래한 대기권의 「온실 효과」 때문이란 것은 이미 정설이나 다름없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극지의 빙산과 고지대의 만년설이 녹아 큰 홍수가 나고 바닷물이 불어난다.
2030년께엔 해면 수위가 1·4m 높아져 많은 해안도시가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인구 53억이 지금의 증가 추세로 간다면 50년 안에 다시 2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의 소비 수준에 변함이 없다고 가정해도 생산과 소비는 양적으로 두배 이상이 돼야한다.
저개발국의 소비 수준 향상까지를 감안하면 에너지 소비로 인한 환경 파괴는 우려의 단계를 지나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서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멀지 않은 장래에 당면할 환경 적 재난과 파국을 내다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주저나 반성 없이 대기와 물과 토양을 파괴하는 행동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나방은 자기가 타죽을 줄 모르고 불길에 덤비지만 인간은 재난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꼴이다.
물론 인간과 지구가 파국에 이르기 전에 이를 막을 수 있는 기술과 수단이 개발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성취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인간의 소비도 절제돼야 한다.
대량 소비를 위한 대량 생산, 쾌락과 편의에 대한 무한대의 욕망과 이를 충족시키려는 과학기술의 무제한 개발에도 자제가 필요하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고 또 공급이 수요를 자극·유발하는 상승 작용의 완화를 위해 소비의 윤리, 생산의 도덕성이 절실한 것이다. 쾌락과 편의의 무한정한 추구가 결과하는 무한대의 소모와 낭비를 극복하는 가치관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만 이것은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방에 넘치고 있는 쓰레기 처리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산업 폐기물은 산골짜기와 강물에 계속 버려질 것이고 산성비는 강도를 더해가고 대기는 계속 혼탁해질 것이다.
쾌락과 편의에 대한 끝없는 추구는 물리적 패악에 그치지 않는다. 부정, 부패, 비리, 퇴폐, 강도 살인, 인신 매매 따위 등 사람의 정신과 심성마저도 마비시키고 황폐시킨다.
환경을 보전하고 정화하기 위한 인식과 행동의 새 출발은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범인류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될 때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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