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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본질에 눈 돌릴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80년「7·30교육개혁조치」이후 범죄 시 되어 온 과외공부가 금지 9년만에「방학중」이라는 제한적 단서를 달고 허용 쪽으로 기울고 있다. 방학중 재학생의 학원 수강과 대학생의 입주과외허용이라는 결정은 문교부의 자문 역으로 끝나는 중앙교육심의회의 확정 안이어서 앞으로의 향방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하지만 4개월에 가까운 기간 교육전문가들이 갑론을박 끝에 나온 결정이어서 이 안을 두고 다시금 허용과 금지의 여론이 불꽃튀듯 일어날 것임은 자명하다.
왜 우리는 지난 10여 년 동안 과외라는 문제를 두고 이토록 팽팽히 맞서 싸워야 하고, 심지어 계층간의 불화와 국론의 분열에 이를 정도의 극한적 논쟁을 해야만 했던가를 냉철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교육받을 권리와 보충학습의 기회 부여, 대학생의 학비조달이 과외찬성 론의 논리라면 70년대 말을 연상시키는 과외망국론,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우려, 그리고 여기서 생겨나는 계층간의 위화감과 학교교육의 파행성이 금지 론의 주장이다.
이 두 논리만으로는 어느 쪽의 주장이 정당하냐는 판단은 설 수가 없다. 어느 쪽 논리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5공은 금지를 택했고,6공은 허용 쪽으로 기울고 있음이 차이일 뿐이다.
과연 우리는 서로 설득할 수 없는 찬반의 논리를 두고 지난 10여 년처럼 계속해서 서로의 멱살만을 잡아야 하는가. 과외를 금지하면 우리의 교육이 올바르게 서고 과외를 허용하면 우리의 교육이 파탄을 일으킬 것인가.
대학입시만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현행 학교교육은 중산층이든, 기층세력이든 어느 누구도 바라는 교육이 아닌「죽은 교육」「죽은 학교」라는 점에 동의해야 한다. 베끼고 외는 주입식 교육에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경쟁교육, 학력이 아닌 학력위주의 간판교육에 「대학에만 들어가 다오」라는 학부형의 무분별한 욕구가 뒤엉켜 다음 세대를 책임질 우리의 자녀들은 억압과 감시의 눈초리 속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강요된 점수 따기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젊고 생기에 넘쳐야 할 그들은 12년의 학교생활에서 시들시들 말라 가고 있음을 우리는 가정이나 학교사회에서 보고 있다.
우린 먼저 다음 사항에 합의해야 한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학교교육이 지금껏 실시되고 있다는 점, 누구나 대학엘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 대학이 곧 취업 허가증이 아니라는 실정을 시인해야 한다. 첨단산업시대를 살아야 할 다음 세대가 암기 식 주입교육으로는 다음세대를 책임질 수 없고 정원 20만 명의 4년 제 대학에 80만 명이 응시하니 60만 명이 들어갈 수 없고 대학만 들어간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우리 모두 현실적으로 받아들인 후 다음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과외금지라는 권위주의적 억압정책으로 허송해 버린 지난 10년, 만약 우리가 자녀의 장래와 다음 세대의 앞날을 겨냥한 올바른 정책 방향을 세워 서서히 추진해 왔더라면 뭔가 달라진 학교교육이 지금쯤은 실시되고 있을 것이다.
다시 10년이 지난 오늘, 되풀이해서 똑같은 지엽말단 적인 문제를 큰 문제인양 떠벌리며 그 밑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을 방치한 채 과외금지가 곧 평등교육인양 목청 높게 떠들어야 할 것인가. 이젠 시들어 가는 자녀, 죽어 가는 학교를 소생시키는데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공부를 더 하겠다는 과외를 법으로 막는다는 것은 애당초 부당한 일이었다. 과외를 막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다. 부작용 때문에 그동안 막아 왔다면 이젠 그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교육의 근본 문제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환부를 치료하지 않고 증세에만 급급 하는 우리 모두가 냉 정을 되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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