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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투혼 만발' 벤투호, 이제는 전술을 입힐 때다

중앙일보

입력

축구대표팀은 정우영(오른쪽)의 결승골에 힘입어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무너뜨렸다. [뉴스1]

축구대표팀은 정우영(오른쪽)의 결승골에 힘입어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무너뜨렸다. [뉴스1]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미 축구의 강호 우루과이와 A매치 평가전은 ‘한국 축구의 봄’을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월드클래스로 평가 받는 우루과이 수비진을 상대로 두 골을 뽑아내며 2-1 승리를 안겼다. 앞선 7차례 맞대결에서 1무6패로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6만4000명의 함성은 109db(데시벨)까지 올라갔다. 항공기 이륙시 소음은 100db, 전투기가 비행할 때 소음은 115db 정도다. 한국 축구가 성공으로 향하는 속도감은 항공기와 전투기의 중간쯤 된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과 믹스트존(mixed zoneㆍ공동취재구역)에는 화사한 웃음꽃이 피었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은 “만원 관중이었고, 수준 높은 경기였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한국 축구가 내리막길을 걸을 때 쓴소리를 마다 않았던 전 주장 기성용(뉴캐슬 유나이티드)도 “팬들이 보셨을 것이다. 경기력도 자신감도 더 나아졌다”고 했다. 상대 공격을 막아내려다 미끄러져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수비수 김영권(광저우 헝다)도 표정이 밝았다. “잔디가 미끄러웠다는 건 핑계다. 내가 좀 더 잘 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도, 마주서서 대화하는 취재진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우루과이를 상대로 짜릿한 2-1 승리를 거둔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축구대표팀. [뉴스1]

우루과이를 상대로 짜릿한 2-1 승리를 거둔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축구대표팀. [뉴스1]

불과 1년 전과 비교하면 대표팀 분위기는 상전벽해다. 지난해 10월 축구대표팀은 러시아에 2-4로, 모로코에 1-3으로 졌다. 경기 전ㆍ후 대표팀 분위기는 무거웠다. 취재진의 질문도, 감독과 선수의 답변도 마치 귀한 도자기를 옮기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일부 네티즌은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나가봤자 망신만 당할 게 뻔하다. 차라리 탈락하는 게 낫다”며 날을 세웠다. 일부 선수들 사이에서 “A매치에 나가봤자 욕만 먹으니 차라리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면 좋겠다”는 푸념이 흘러나오던 시기다. “장현수(FC 도쿄)는 수준 높은 선수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보호해줘야한다. 그의 경기력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벤투 감독의 발언은 한동안 축구대표팀 관계자가 공개 석상에서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벤투 감독의 초반 행보는 긍정적이다.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2-0승),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금메달)의 상승세를 A매치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축구대표팀 인기 재점화에 힘을 보탰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코칭스태프,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 인근에 숙소를 마련하는 열정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부임 이후 보여준 언행으로 평가하건대 호쾌하고 대범한 리더는 아닌 듯하나 꼼꼼하고 정열적이다. 이제 A매치 세 경기를 치른 시점에 ‘갓투’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필요까진 없겠지만, 딱히 꼬집을만한 단점이나 약점이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의 봄'을 이끈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양광삼 기자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의 봄'을 이끈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양광삼 기자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심정으로 첨언하자면, 이제부터는 ‘전술적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벤투 감독 부임 이후 전적(2승1무)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술의 승리라기보다는 선수들의 투혼이 돋보인 장면이 더 많았다. 감독이 만들어 준 ‘4-2-3-1’과 ‘후방 빌드업’이라는 큰 틀 안에서 선수들이 강한 집중력을 보여주며 가진 것의 120%를 끌어냈다. 지난달 코스타리카전(2-0승)과 이달 우루과이전에서 페널티킥 기회에 잇달아 실축하고도 후속 장면에서 리턴 슈팅으로 기어이 골을 만들어낸 장면이 대표적이다.

벤투 감독은 취임 이후 A매치 세 경기에서 포메이션과 선수 구성은 물론, 교체 카드까지도 엇비슷한 패턴을 활용했다. 감독 자신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면 ‘대표팀에 연속성을 입히는 과정’이다. 내년 1월 아시안컵을 앞두고 ‘안정감’을 대표팀 경쟁력의 제1 요소로 설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루과이전 승리를 통해 벤투 감독의 노력이 일정 부분 열매를 맺었다.

우루과이와 A매치 평가전에서 붉은악마가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이날 경기장에는 6만4170명의 팬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한국 축구의 봄'을 만끽했다. [뉴스1]

우루과이와 A매치 평가전에서 붉은악마가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이날 경기장에는 6만4170명의 팬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한국 축구의 봄'을 만끽했다. [뉴스1]

16일 천안에서 열리는 파나마전과 다음달 호주에서 치를 A매치 2연전은 전술 변화에 따른 우리 선수들의 적응력을 점검할 기회다. 파나마는 ‘선수비 후역습’에서 국제 경쟁력을 인정받는 팀이다. 일본, 호주, 이란 등을 제외하고 아시안컵 본선에서 우리와 만날 대부분의 나라들이 엇비슷한 전술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11월 A매치는 ‘에이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없이 치러야 한다. ‘벤투식 4-2-3-1’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때, 손흥민이 대표팀과 함께하지 않을 때 꺼내들 수 있는 ‘플랜B’가 필요하다.

이는 벤투호가 당면 과제로 정한 ‘아시안컵 우승’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 과제이기도 하다. 벤투 감독 또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우루과이전 기자회견에서 ‘A매치 라인업이 매번 엇비슷하다’는 질문에 대해 “짧은 소집 기간 동안 팀의 원칙과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면서 “상황에 맞춰 라인업을 유지할지 변화를 줄 지 결정할 것"이라면서 "선발 명단이나 전술의 방향성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벤투 감독을 앞세운 한국축구대표팀은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 지난 1960년 이후 59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한국 축구의 꿈★은 이어질 수 있을까. 우루과이전 카드 섹션 모습. 양광삼 기자

벤투 감독을 앞세운 한국축구대표팀은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 지난 1960년 이후 59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한국 축구의 꿈★은 이어질 수 있을까. 우루과이전 카드 섹션 모습. 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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