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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핵 신고 연기 제안’ 다음날, 제재 고삐 더 죈 미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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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호 06면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 넷째)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왼쪽 다섯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 넷째)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왼쪽 다섯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북한의 핵 신고는 일단 뒤로 미룬 채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폐기부터 맞교환하자는 지난 4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밝힌 정부 중재안에 대해 미국의 초기 반응은 시큰둥했다. 5일 강 장관의 접근법을 두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직접 나서 ‘새롭고 창의적인 접근법’이라고 거들었지만 다소 뻘쭘해진 흐름이다.

미 재무부, 폼페이오 방북 사흘 전 #터키 기업·CEO 등 추가 제재 발표 #국무부 “완전 검증 비핵화” 재확인 #전문가 “미, 강 장관 제안에 부정적” #트럼프·김정은 만나면 달라질 수도

‘완전한 검증’을 강조하는 발언은 이날 트럼프 행정부 내 국무부와 재무부에서 동시에 나왔다.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통상적인 비핵화 방식에서 벗어나 ‘신고’와 ‘검증’ 없는 ‘폐기’는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의미다. 먼저 미 국무부 관계자는 지난 4일(현지시간) 강 장관의 중재안에 대한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논평 요청에 “우리 목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진전에 달려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강 장관의 중재안에 대한 논평 요구에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반응은 탐탁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북한의 제재완화 요구에 대해서도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는다면 제재는 완전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VOA는 보도했다.

미 재무부는 나아가 행동에 나섰다. 추가적인 대북 독자제재를 발표한 것이다. 재무부는 지난 4일 유엔 안보리 결의가 금지한 무기와 사치품을 북한과 불법 거래한 혐의로 터키 기업 한 곳과 터키인 두 명, 북한 외교관 1명에 대한 독자제재를 단행했다. 새로 추가된 제재 대상은 터키 기업인 시아 팰컨 인터내셔널그룹,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휘세이인샤힌과 총지배인인 에르한 출하, 주몽골 북한대사관 소속 이성운 경제상무참사관이다.

재무부에 따르면 터키 기업인 시아 팰컨 인터내셔널그룹은 북한산 무기와 관련 제품, 사치품 등을 수출·수입·재수출하는 방식으로 직간접적인 교역을 한 혐의다. 이 회사 관계자들은 올해 무기 및 사치품 무역 거래를 협상하기 위해 이 참사관을 터키로 초청하기도 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보도자료에서 “(제재 대상에 오른 기업과 인물들은) 수년간 유지돼 온 무기 및 사치품 거래에 대한 유엔 제재를 노골적으로 어기려는 시도를 해 왔다”며 “국제사회는 이런 시도를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제재 이행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내신 기자 회견을 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내신 기자 회견을 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굳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네 번째 방북을 사흘 앞둔 시점을 발표 날짜로 택일했다는 점에서 이날 재무부의 제재 발표는 대북 압박의 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평양 공동선언에서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꺼낸 후 미국이 취할 상응조치 중 하나로 대북제재 해제를 강하게 요구해 왔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날 반응으로 미뤄볼 때 7일 방북하는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과의 담판 자리에서 강 장관의 중재안을 의미 있게 활용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분위기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이날 중앙SUNDAY에 “북한이 현 시점에서 미국이 요구해 온 핵 신고를 수용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가 ‘핵 신고 vs 종전선언’에서 ‘영변 핵 폐기 vs 종전선언’의 딜을 만들어 보려고 움직이는 것 같다”면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미국의 반응은 일단 소극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강 장관이 제시한 안은 미 행정부 내 정통 북핵 라인의 입장에서 볼 때 비핵화의 개념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반응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며 “다만 트럼프-김정은 2차 만남이 이뤄진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 방러 협의 중=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후 방한한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이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김 위원장과 회담했고 방러 날짜와 장소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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