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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복통 노인강도단 “은행을 털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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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호 32면

책 속으로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칠순의 스웨덴 작가 한국 나들이 #70대 노인들의 유쾌한 범죄 그려 #복지천국 스웨덴 그늘도 들춰내

죽음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노년. 스웨덴 작가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가 우울한 노년을 위로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강도단을 조직해 은행을 털게 하고, 78세·79세 남녀가 언제 결혼할 것인지를 두고 티격태격하게 한다. 이 작가의 소설 세계에 철 드는 일 같은 건 없다. 노인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힘을 얻고, 젊은 층은 한 번이라도 따스한 시선으로 노년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막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노인 주인공 시리즈의 세 번째 장편소설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얘기다.

스웨덴 노인 소설의 공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같은 작품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아치운 ‘프레데터’ 요나손 등에 비하면 잉엘만순드베리 소설은 시리즈 세 권 합쳐 200만 부 수준이라니까 온건한 초식동물 혹은 ‘중박’ 수준. 7일까지 홍대 앞에서 열리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 초청돼 한국을 찾은 작가를 4일 만났다. 소설 속 메르타보다 아홉 살 아래인 만 칠순이지만 메르타처럼 유쾌한 할머니 작가였다. “내 소설이 웃겨 쓰는 내내 웃었다”고 했다.

유쾌한 노인 강도단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스웨덴의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새 소설 출간에 맞춰 방한했다. [사진 열린책들]

유쾌한 노인 강도단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스웨덴의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새 소설 출간에 맞춰 방한했다. [사진 열린책들]

웃기는 소설을 쓰는 비결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 웃기는 걸 좋아했다. 사는 게 팍팍하니까 웃고 살자, 아무리 심각한 일에도 웃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이 은행을 털게 하고 싶었는데, 무기를 사용하는 스웨덴 범죄 소설 방식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쓰레기를 진공팔로 빨아들이는 청소차를 써먹기로 했다. 경찰들에게 물어보니 금고실 천장을 뚫는 게 가장 좋다고 하더라. 건물 도면을 들여다보며 은행 건물들의 구조를 샅샅이 조사했다.”  

저자는 수중고고학자로 15년간 일했다. 의사 부모가 작가가 되는 걸 말렸지만 일간지 기자를 거쳐 42살에 작가가 됐다. 베스트셀러를 쓰기 위해 판매 순위 상위권 책들을 철저히 연구했다고 했다.

베스트셀러를 쓰는 비결은 뭐든가.
“돈을 주면 알려주겠다. 실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내 소설에 대해 말한다면) 내 소설은 어리게는 일곱 살, 나이 많게는 106살까지 독자가 있다. 흔히 11~14살 남자아이들이 책을 가장 안 읽는다고 하는데 그 친구들도 내 소설은 읽는다고 들었다. 내 소설의 노인들은 은행을 털면서도 친절한 태도를 보여준다.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누구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은 거대한, 뼈 있는 농담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노인들의 은행털이는 제 배 불리자는 게 아니다. 스웨덴은 흔히 복지 천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전히 궁핍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기 위해서 은행을 턴다는 설정이다. 저자는 그런 면에서 자기 소설이 “일종의 정치 선전물(political pamphlet)”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노인 요양시설 예산이 크게 줄어, 하루 세 끼 식사, 1시간 외출, 각종 워크숍 기회를 보장하는 감옥보다 못한 곳으로 전락했는데 그런 현실에 화가 나 소설로 썼다고 했다. 소설이 출간되자 정부 관계자가 “실제 노인 현실이 그렇게 좋지 않은가”라고 물어 “소설보다 더 나쁘다”고 답해줬다고 했다.

한국도 노인 인구 비중이 높다. 행복하게 노년을 맞는 방법은.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건강해진다. 주변의 누군가를 아끼고 신경 쓰면 삶이 쉬워진다.”
소설에 노인 로맨스도 나온다.
“아버지가 99세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데리고 있던 비서와 동거를 시작했다. 비서와 함께한 92세에서 99년까지 7년간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전에 말씀하셨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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