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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카시대와 목숨의 가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가 전쟁을 혐오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이 소중한 목숨을 잃는다는데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는 지난 한햇동안 10년간 월남전쟁에서 전사한 우리 국군의 3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길에서 목숨을 잃었다. 매년 우리 사회는 교통사고로 거의 세번의 월남전을 치르고있는 것과 맞먹는 인명피해를 보고있다는 이야기다. 「교통전쟁」이란 이제 빈말이 아니게 되었다.
최근 치안본부가 집계한 88년의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구태여 전사자수와 비교하는 것은 그런 비참한 비교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충격을 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그런 충격요법을 통해 이 맹랑한 인명손실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성 있는 방도가 나와야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치안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 수는 1만2백94명이었다. 이 숫자는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처음으로 1만명 선을 돌파했다는 놀라움 뿐 아니라 87년까지 연평균 5·8%의 증가율을 보여온 인명손실이 지난해에는 갑자기 42·9%로 껑충 뛰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다.
이 엄청난 사망자수의 급증에는 자동차수와 신참 운전면허증 취득자수의 급증 추세 외에도 여러가지원인이 있을 것이다. 당국은 지금까지와 같은 타성에 빠진 진단과 실효성없는 대책을 되풀이 하지말고, 그 원인을 면밀히 검토한후 이를 제거하는 노력을 범국민적 차원에서 쏟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교통사고의 피해는 과거 전염병 이상의 희생과 공포분위기를 온 국민들에게 안겨주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선 당국에 대해 일천한 마이카시대에 임기응변 식으로 얽어매 놓은 「자동차 문화」의 기본 골격을 재평가하고 대량 자동차시대를 수용할 수 있는 거시적 청사진을 마련하도록 촉구한다.
그와 같은 청사진의 최우선 순위는 안전제일주의가 모든 운전자의 몸에 배게 되도록 유도하는 여러 각도의 조치에 두어져야할 것이다. 첫째, 그런 노력의 시발점은 현행운전면허시험을 도로 주행시험으로 바꾸는 일이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T자, S자 시험은 주차기술을 테스트하는 것이지 사람과 자동차가 붐비는 도로상의 안전운전을 테스트하는 방법은 아니다.
둘째, 도로망의 정비가 시급하다. 고속도로와 고속도로는 정상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고속도로와 고속도로가 서로 정상적인 접선이 되지 않는 지점, 도로폭이 갑자기 좁아지는 지점, 차선 변경 거리가 짧아 거의 직각으로 가로 질러가야 하는 연결점 등 마치 미로같이 얽힌 길이 너무 많다. 이런 도로망의 정비에 예산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세째, 사고 이후 부상자 취급에 전문성을 도입해야 된다. 교통사고의 치명적 상처는 뇌와 척추다. 이런 상처는 사고 현장에서 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자칫하면 생사가 결정되고 완치할 수 있는 부상자를 부패자로 만들 수도 있다. 외국에는 구급차마다 「응급의료기술자」 (EMT)가 타고 있어 부상자를 전문적으로 응급조치 함으로써 사상율을 줄이고 있다. 이제는 이런 기술자들을 전문적으로 훈련시켜 배치할 단계에 온 것 같다.
아직 생소한 「자동차 문화」의 정착을 위해 당국은 보다 거시적 안목으로 년 사망자 1만명 돌파라는 불행한 사태를 되돌릴 수 있는 종합적 교통안전대책을 마련해 과감히 실천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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