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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에게 복수하려 “강간” 무고한 여성 실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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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초 남자친구와 교제를 시작한 A씨는 종종 자신의 재력을 자랑하는 남자친구로부터 고가의 차량을 선물받기로 했다. 남자친구의 약속을 믿은 A씨는 급전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선뜻 100만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돈은 물론 선물해주겠다는 차량도 받지 못했다. 이에 A씨는 앙심을 품고 남자친구로부터 모텔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가 재력을 속인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고자 누명을 씌운 사실이 드러났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지난달 28일 A씨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성범죄 무고 느는데 실형 극소수 #합의·반성 이유로 대부분 풀려나 #“성폭력 처벌 수위 비해 약해” 지적 #전문가 “다른 범죄와 형평 따져야”

최근 잇따라 발생한 성추행 및 성폭행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 논란이 남녀 간 성대결로 번지면서 A씨의 사례처럼‘성범죄 무고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지난달 26일 “무고죄로 기소된 사람이 집행유예를 받는 것은 상대방이 치러야 할 대가에 비하면 너무 가볍다”며 “성폭력 무고범들도 이에(성범죄에) 상응하는 처벌로 다뤄주실 것을 청원한다”는 내용이 올랐다. 이같은 성범죄 무고죄 관련 청원은 지난달에만 30건 넘게 올라왔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무고사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무고죄 발생건수는 지난 2013년 3012건에서 지난해 3691건으로 5년 사이 22.2%가량 증가했다. 성범죄 관련 무고죄 수치가 별도로 집계되지는 않지만 올해 법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10건 중 3건 정도는 성범죄 관련 무고죄였다.

사정이 이렇지만 경찰 등에 따르면 A씨의 실형 선고는 성범죄 무고 사건 중 드문 경우다. 형법 156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지만 피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법정에서 대다수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고 마무리되는 실정이다. 지난 9월 내연관계에 있던 직장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50대 여성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올해 2월에는 여고생을 성추행했다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검찰 공무원이 보복으로 여고생을 무고했다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위한 법 개정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평 전 한국교육법학회 회장은 “국회에서 최저 형량을 3년 이상으로 개정해 집행유예를 선고 못 하게 하는 방법 등으로 법 개정을 통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법은 사회적 보루이자 최소한의 기준이어야 하는데, 특정 사건으로 여론이 불거질 때마다 법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범죄 예방효과 등을 이유로 성범죄 무고죄 관련 처벌이나 요건을 강화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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