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남북대화 빈번…직교역 가능성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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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해도 남북관계는 양측이 처해있는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각종 대화제의 및 역 제의가 빈번해지는 가운데 전개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자연 막후절충도 활성화되고 경제교류 등 제한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본질을 바꿀만한 의외의 변수, 예컨대 김일성의 사망과 같은 결정적인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통일에의 성급한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획기적인 「사건」은 없으리란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민정당 총재자격으로 노태우 대통령을 초정한데서 시사되듯이 새해 북측의 대화공세는 치열해질 것 같다. 또 김일성의 신년사 제의처럼 우리의 실정을 도외시한 공허한 제의도 있겠지만 우리가 응수하기에 따라서는 국회회담 등 몇 개는 성사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게 한다.
오히려 정치분야보다는 경제적 측면에서 간접교역이 상당한 정도로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직교역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자면 교역을 원하는 북의 지속적인 정책유지와 북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우리의 자세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경제교류의 가능성을 점치는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북양측의 상황이 모두 그렇게 가는 것이 득이 될 것이라는 명백한 계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쪽을 보면 변화와 개방이라는 도전이 안팎으로부터 가중되고 있다. 북한은 40여년 동안 신격화된 1인 통치자의 지배하에 주체이론을 바탕으로「하나의 조선」「반미·항일」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체제다.
특히 통치기술로 우리사회를「헐벗고 굶주리며 군사파쇼에 시달리는 미제식민지」로 규정, 이를 구성원들에게 주지시켜 왔다.
그런데 최근 중·소의 대한 관계개선이라는 외압이 밀어닥쳤고 내부적으로는 군비치중에 따른 민생경제의 곤궁, 특히 식량난에 봉착하게 됐다.
외채 50억 달러를 갚을 길이 없어 서방은 물론 동구권으로부터도 사실상 무역거래를 할 수 없는 형편이고 기껏 수출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게 석탄이나 명태 등 1차 산품이 고작이다. 이들 물품을 사갈 나라도 많지 않고 값도 신통치 않다. 그들로서는 한국이 구상무역의 파트너로서 최적격이다.
이같은 상황변화로 북한권력 지배층은 종전과 같은 논리나 정책만을 고수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갖게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그들은 기본체제나 노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정책수립이나 집행에 변화를 주자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같은 변화가 그들의 기본목표를 달성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는 판단도 선 것 같다는 관측이다.
이런 변화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로마교황의 초청, 서방여행사와의 관광계약 체결, 평양에 교회와 성당을 건축한점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합영공업부라는 새로운 부서를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김일성의 신년사내용이나 지도층의 발언, 각종 대남 제의의 속셈을 들여다보면 북한은 본질적으로 결코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대통령을 민정당총재자격으로 초청하겠다는 것은 국가원수로는 인정치 않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해 7차 국회회담 예비접촉에서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우리내부에 이를 이슈화시키는 것이 그때가 적기라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북한의 허담은 지난해 평양을 방문한 일본사회당 의원들에게 『이제야 남한에서 혁명역량이 성숙돼 가고 있다』고 언급한바 있으며 아웅산 사건 등 대남 테러 전문가인 김중련등을 재기용한 것은 그들의 본심을 읽게 하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볼 때 결국 북한은「근본은 바꾸지 않되 유연성을 보이자」는 기본전략을 수립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사회 내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역간·계층간 갈등이 첨예화해 가는 가운데 남북관계에 대해 보수우익세력과 진보세력의 대립이 점점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쪽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의 탄력성있는 정책을 취할수 있는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진 측면이 있다.
한 예로 정부가 남북학생회담을 막으면 정치적 부담이 생기고, 이를 허용하려면 보수우익계층의 세찬 비판에 직면하게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5공청산등 국내문제가 복잡하면 할수록 남북관계 개선에 더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조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양측의 입장은 상대방의 대화제의를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고 있다. 따라서 금년에는 외형적으로 각종 대화제의와 접촉이 빈번해질 것으로 보이며 학생회담·국회회담에서의 개막모임 정도는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경제교류도 직접이든, 간접이든 북한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측에서 평화공존선언이 나온다든지, 혹은 우리측이 팀 스피리트 훈련을 중지한다든 지의 극적인 상황변화가 없는 한 획기적인 진전은 없으리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을 설득, 개방토록 해야한다는 당위론 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북 문제에 대한 우리 내부의 정돈, 계속적인 경제발전이 선결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면서 북한의 체면을 결코 손상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 특히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요청되고, 그같은 정책효과가 축적되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우리의 기대다. <안희창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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