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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고 나면 또 압수수색 … ‘인권 공화국’ 약속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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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이 어제 의원회관에 있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정부의 수도권 부동산 개발 정보 유출 건과 관련된 일이었다. 지난달 21일에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청와대 업무추진비 지출에 대한 정보를 불법적으로 입수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정치권에선 신 의원에 대한 수색은 심 의원 수사 논란을 축소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라는 주장도 제기됐는데,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국회의원 사무실을 이렇게 검찰이 마구 뒤져도 되는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국회의원이 치외법권의 성역 속에 사는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부에 대한 수사는 신중히 해야 한다. 의원회관이 수시로 압수수색을 당하면 공무원이나 일반인의 비리 제보나 고발이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 본연의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모범적 선진국에서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중대범죄가 아니면 의원실을 압수수색하지 않는다.

그제는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들을 압수수색했다.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직 대법관 집에서 재판에 대한 의견 또는 주문이 담긴 법원행정처의 문건이 나온다고 해서 재판 거래의 직접적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대법관들이 “양심에 따라 재판했다”고 하면 그만인데도 일단 압수수색을 하고 본다.

올 상반기에 검경이 발부받은 압수수색영장이 하루 평균 650개로 지난해보다 20% 늘었다. 어느새 인권과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는 증발돼 버리고 압수수색이 관행적인 수사의 한 기법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기업에 대해서도 수십 차례 압수수색을 반복하고, 별건 수사를 하는 일도 흔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인권 공화국’은 어디로 가고  ‘압수수색 공화국’과 ‘검찰 공화국’만 남게 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