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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의 일본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히로히토」(유인)의 죽음은 「경제대국」 일본에 악몽처럼 따라다니는 「제국주의」라는 인상을 청산하고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새롭게 마련해야 할 계기를 일본인들에게 주고 있다.
근대국가의 성립, 제국주의적 도전, 전후 경제대국으로서의 부상 등 일본 근·현대사 변신의 저변에서 일관되어온 「천황제」가 이번 「히로히토」의 사망으로 다시 관심권으로 등장한 것도 일본의 앞으로의 진로 탐색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실시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일본인들의 대다수가 「상징 천황제」를 지지(82)하고 단지 8.2%만이 보다 더 광범위하고 명확한 권한을 주어야한다는 응답을 하고있어 어떤 의미에서든 「천황제」가 존속될 것은 확실하다. 「히로히토」사후 일본의 여론은 여러 갈래이나 대체적으로는 국제화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일본의 위상을 정립하려는 계기로 남으려 하고있다.
즉 「히로히토」로 상징되던 전쟁 도발국의 어둡고 부담스러운 이미지를 그의 죽음과 함께 떨쳐버리고 세계 제2위의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화시대의 주역으로서 미소와 함께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를 이룩해낸다」는 뜻의 새 연호 평성의 사용은 일본의 이러한 여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왕실외교가 앞으로 활발해질 것으로 예견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왕세자 시절부터 유럽순방을 비릇, 구미의 외교가를 몇 차례 방문, 국제외교 무대에 많이 알려진 인물인데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전범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활동은 앞으로 상당히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또 그가 일본왕가의 규율을 어기고 평민 출신의 「미치코」(미지자) 왕비와 결혼을 결심할 때 보여준 파격적인 행동 등을 감안하면 「히로히토」때와는 전혀 다른 면모의 활동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일본전역을 휩쓸고 있는 보수화의 열풍을 감안한다면 새 일왕의 위상은 그 의지나 취향이 어떻든 상당히 미묘한 변화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일본의 극우화 경향이 국제사회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일왕을 앞세워 진행할 경우 「천황제」의 확대 강화론으로 대두될 것이며 이것은 주변국을 자극, 새로운 불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황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우는 식의 방식은 「군국주의 부활의 무대장치」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켜 자칫하면 보수세력의 막강한 응원군의 대두가 「천황제」를 존폐의 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보수세력도 알고있기 때문에 보다 더 우회적인 방법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일본의 극우세력이 「천황제」를 활용하는 데에 있어 전전과는 달리 보다 더 지능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경우 일본 「천황제」배후에서 국제사회에의 기여를 내걸고 서서히 발언권을 높이려는 일본 극우세력의 힘과 의욕이 관심거리다.
실제로 일본 근대사는 「도쿠가와」(덕천) 막부 말기에서부터 아시아제패의 야욕을 보여왔다. 더구나 소화시대의 「천황제」강화를 통한 국가 개조론은 일본식 민주정치의 선구적 시기였던 「대정데모크라시」이후에 득세, 급기야 2차 세계대전을 초래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아키히토」 일왕의 신 역할증대, 혹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도 전전과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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