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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 좀 솔직해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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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국 관계의 근간인 한.미동맹이 바로 그렇다. 북한에 대한 입장 차이와 미.일 간 밀착으로 한.미동맹은 안팎에서 사망진단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 당국은 기회만 있으면 "동맹은 굳건하며 더욱 건강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동맹의 생명은 위협에 대한 공동 인식이다. 그러나 양국의 대북 인식은 서로의 접근법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정도로 평행선이다.

그럼에도 동맹이 온전해 보이는 것은 국내 지지기반을 의식해 말은 반미적으로 하면서도 행동은 동맹에 기여하는 쪽으로 해 온 노무현 대통령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다. '반미 좀 하면 어때?'하면서도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 '한반도의 전쟁기지화는 안 된다'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 주었다.

스크린쿼터의 대폭 축소에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선언은 미국 입장에서 뜻밖이었다. 동맹의 한 단계 격상과 한.미 관계의 지속적 결속을 위한 노무현 정부의 신임투표로까지 의미가 부여됐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과연 이를 성사시킬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전략적으로 또는 협상과정에서 안 될 줄 알면서 후일의 면책용으로 들고 나왔는지에 대한 의혹의 눈길 또한 없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평택사태와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 그리고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 여론 등 반미기류가 드세지면서 노 대통령의 '본심'이 하나 둘씩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조건부 포용을 위한 대북압박에 '조건 없는 더 많은 지원'으로 맞선 노 대통령의 의중이 그 첫째다. 이는 곧 한국의 대북지원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양국 간 공감대가 깨진 것을 의미한다. '6자회담을 살리려는 고육책'으로 둘러대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사안이다.

평택사태의 본질 또한 '미군 물러가라'다. 그럼에도 이 본질에는 침묵하고 제3자인 양 질서 유지와 양측의 자제만 호소하는 정부의 자세 또한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더욱 의아한 것은 한.미 FTA가 대통령의 고뇌 어린 용단으로 평가받고 있는데도 집권여당이나 정권 실세들이 몸을 던져 집권세력 내부나 외곽 시민단체들의 반대여론을 적극 설득시키려는 의지나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이다. 워싱턴 원정시위의 중단을 촉구하는 정부 담화문 발표가 고작이다. 주한미상공회의소가 참다 못해 한.미 FTA 설득에 대통령과 여당 국회가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주문하고 나서는 마당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다 탈북자의 미국행이 잇따르면서 한.미 관계는 불신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북핵 문제의 본질 또한 북.미 간 신뢰 결핍이다. 이 신뢰의 갭을 한국이 중간에서 메워주기는커녕 '북한에 돈지갑을 너무 벌려 핵협상을 뒤엎는다'는 오해까지 받고 있다. 수사(修辭)나 단순한 견해차를 넘어 서로 간에 기본전략과 그 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이다. '부시 이후'나 '노무현 이후'로 미룬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치적 제스처나 말의 게임을 접고 두 나라 당국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