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오류 '고의'로 유도했나…심재철 보좌진 처벌 방향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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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재정정보분석시스템 '디브레인' 자료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심 의원은 검찰의 강제수사에 대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부와 민주당의 야당 의원실에 대한 탄압"이라고 밝혔다. [뉴스1]

정부 재정정보분석시스템 '디브레인' 자료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심 의원은 검찰의 강제수사에 대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부와 민주당의 야당 의원실에 대한 탄압"이라고 밝혔다. [뉴스1]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심 의원이 제기한 정부·청와대의 ‘예산 편법사용’과 관련한 의혹은 ▶정부부처 특수활동비 전용▶청와대 업무추진비 유용▶청와대 회의수당 부당지급 등이다.

문제는 의혹 제기의 기초자료가 된 예산 사용내역이 ‘비공개 자료’라는 점이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심 의원의 보좌진 3명은 한국재정정보원이 관리하는 디브레인(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에서 37개 기관의 비인가 행정자료 47만 건을 190회에 걸쳐 열람하거나 내려받았다.

소관 부처인 기재부는 심 의원 보좌진 3명을, 심 의원은 김동연 기재부 장관 등을 검찰에 고발하며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심 의원 보좌진에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사건을 수사 중이다. 특히 보좌진들이 디브레인에 접속해 미인가 정보를 열람한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로그기록을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미인가 예산정보 열람·유출 의혹에 대한 기재부와 심 의원 측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기재부는 심 의원 보좌진들이 해당 예산정보에 접근하고 내려받아 외부에 공개한 일련의 과정을 모두 ‘불법’으로 규정했다. 반면 심 의원 보좌진은 정당한 의정활동을 검찰과 청와대가 탄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심 의원이 비공개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유출한 것은 ‘범죄’일까 예산 사용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의정활동’일까.

5단계 이상의 복잡한 과정 거친 불법?

기재부는 보좌진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시스템 오류를 활용해 의도적으로 예산정보에 접근했다고 보고 있다. 그 근거로 5단계 이상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디브레인 내 ‘비정상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앞세웠다.

하지만 심 의원실에서 녹화해 둔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인가받은 아이디로 디브레인에 접속한 뒤 백스페이스(뒤로가기) 버튼을 2번 누르는 것만으로도 시스템 오류가 발생, 미인가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백스페이스를 활용한 것은 해킹?

시스템 사용 중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것을 '해킹'으로 볼 수 있을까. [중앙포토]

시스템 사용 중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것을 '해킹'으로 볼 수 있을까. [중앙포토]

보좌진이 ‘백스페이스’를 눌러 미인가 정보에 접근한 것은 해킹에 해당할까.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한 사설업체의 보안팀장은 “백스페이스를 눌러 특정 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해당 시스템 사용법과는 무관한 기술적 행위이므로 넓은 의미의 해킹으로 봐야 한다”며 “보안상 취약점을 인지한 것은 우연이라 해도 이후 지속적으로 이를 활용했으므로 고의성 역시 인정된다”고 말했다.

반면 시스템 사용 중 백스페이스 버튼을 누르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이를 해킹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심재철 의원은 별다른 위법행위 없이 정보를 취득하였고 그 목적은 예산 남용 실태의 파악이었다”며 “의원실이 적극적인 해킹을 했다기보단 재정정보원의 보안시스템이 부실해 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보좌진들, 불법성을 인지했나

김동연 기재부 장관. 기재부는 지난 17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심재철 의원실 소속 보좌관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심 의원 역시 지난 19일 무고 혐의로 김 장관 등을 고소하며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연 기재부 장관. 기재부는 지난 17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심재철 의원실 소속 보좌관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심 의원 역시 지난 19일 무고 혐의로 김 장관 등을 고소하며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기재부는 “비정상적인 접근 방법을 최초로 습득한 황모 비서관은 디브레인을 6년 이상 사용해왔기 때문에 불법성을 인지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디브레인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미인가 자료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는 주장이다.

불법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접근했는지는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밝혀내야 하는 ‘고의성’과도 연결된다. 검찰 역시 기재부와 마찬가지로 보좌진들이 시스템 오류를 유발, 비공개 정보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해당 자료를 내려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재부가 지목한 황 비서관은 “디브레인을 제대로 사용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당연히 불법이라는 사실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시간 보좌진으로 일한 것은 맞지만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을 보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디브레인 역시 과거엔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다”며 “해당 자료에 비공개 자료라거나 미인가 자료라는 표식이 전혀 없어 보좌진 권한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인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예산자료 활용한 폭로, 정당한가

심 의원실 소속 황 비서관은 기재부가 통보하기 전까진 해당 예산정보가 권한 밖의 자료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재부가 검찰 고발에 나선 이후에도 언론 보도자료 등을 통해 폭로를 이어가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 27일 심재철 의원실의 비인가 행정정보 유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김용진 기재부 2차관. [연합뉴스]

지난 27일 심재철 의원실의 비인가 행정정보 유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김용진 기재부 2차관. [연합뉴스]

기재부는 보좌진들이 불법행위임을 알면서도 계획적으로 반복적인 범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지난 27일 “대통령비서실의 예산집행 내역 등 자료의 외부 유출과 공개가 계속 반복돼 심 의원을 사법기관에 추가 고발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서울중앙지검에 추가고발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예산 사용 감시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업무 특성상 심 의원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해당 예산정보를 사익 추구가 아닌 공익적 차원에서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삼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기재위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예산 사용을 둘러싼 의혹점을 발견하고도 모른 척 넘어갈 순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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