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월북작가 저작권 첫 쟁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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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월북작가가 북한에서 쓴 작품에 대한 저작권 귀속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돼 처리결과가 주목된다. 최근 도서출판 공동체에서 월북작가 박태원이 77년부터 86년에 걸쳐 쓴 대하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출판한 것에 대해 남한에 살고 있는 박태원의 2남 박재영과 지난해 8월부터 판권계약을 맺고 있는 도서출판 깊은샘이 저작권법상 재산권침해라며 소송을 고려중에 있다.
월북작가의 저작권문제는 아직 명확한 법 해석이 이뤄진 적이 없는데다 이번 박태원의 경우는문제가 좀더 복잡하다.
우선 박의 『갑오…』가 정부의 미해금 대상인 해방후의 북한문학작품이다.
해방후 북한소설에 대한 저작권문제가 남한 법정에서 송사될 경우 북한에서 재혼한 박의 가족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느냐는 점이 먼저 떠오른다. 이에 대해 윤희창 문공부 저작권 과장은 『우리 나라 민법에는 아직 북한주민의 재산권 보호에 대한 규정이 없으므로 작가자신의 재산권인정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해방후의 작품이라도 당연히 남한의 가족에게 권리가 돌아간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박원순 변호사는 『이곳에 두고 간 가족이나 그곳에서 재혼해 생긴 가족 양쪽 다 저작권보호권리와 상속지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박태원은 지난63년 남한가족들의 실종신고에 의해 사망처리되었지만 북한의 기록을 통해 지난86년 사망한 것으로 공식확인되었다.
이 경우 이번 『갑오…』소설은 남한의 호적상으로 보면 죽은 사람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문제가 법정에서 논란이 될 경우를 대비해 박의 유족들은 지난4일 법원에 박태원의 사망일자 정정신청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
도서출판 깊은샘의 박신숙씨는 『아직 월북작가의 저작권문제가 명확치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를 사법적으로 정리하는 한 계기를 마련키 위해서라도 법적판례를 만들어볼까 한다』고 밝혔다.
도서출판 공동체의 나혜원씨는 『당초 박태원의 저작권귀속은 북의 부인 권영희씨에게 있다고 판단, 책을 출판했지만 어떻든 사법적 결과에 따르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정부의 북한예술에 대한 해금·미해금조치가 법적구속력을 갖느냐는 문제를 법정에시 일단 가려볼 수 있는 기회가 돼 출판계의 또 다른 주목을 모으고 있다.

<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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