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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아재 덕후의 덕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추석 연휴, K팝 가수들의 동영상을 즐기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K팝의 인기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관심이 이제는 틈만 나면 동영상을 찾아 즐기는 단계로 발전했다. 지긋한 아재임에도 우리 젊은 가수들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이제 웬만한 그룹의 멤버 이름과 특징까지 꿰게 됐다. 그중에서도 관심은 단연 BTS다.

최근 미국·캐나다 등에서의 공연 열기와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들의 위력을 더욱 실감했다. 그저께는 BTS 리더 김남준(RM)의 유엔 연설 장면을 보면서 그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서서히 그들에게 빠져들면서 이제 나도 덕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オタク)’에서 온 말이다.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뜻하는 용어다.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것이 ‘오덕후’이고 이것을 줄인 말이 ‘덕후’다. 원래는 어떤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긍정적 의미의 말로 발전했다.

아이돌 등 가수에게 빠져든 덕후들은 그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콘서트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상징물을 사서 모으곤 한다. 이렇게 덕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입덕’, 이들의 행위는 ‘덕질’이라 한다.

성공한 덕후는 ‘성덕’이라 부른다. 자신이 어떤 대상이나 분야에 덕후임을 밝히는 일은 ‘덕밍아웃’이라 한다. 얼마 전 미국의 유명 가수나 배우 등이 BTS를 좋아한다며 공개적으로 덕밍아웃을 했다고 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나 역시 이 자리에서 덕밍아웃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들 용어는 신조어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글을 쓸 때는 망설여지는 단어다. 요즘은 이들 용어가 꼭 연예인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쓰이는 말이 됐으므로 논의를 거쳐 사전에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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