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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과 이윤 공유해야" 中정부, 민간기업 간섭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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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샤오핑(邱小平·54)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이하 인사부, 한국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격) 부부장. [사진=촨화그룹 홈페이지]

추샤오핑(邱小平·54)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이하 인사부, 한국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격) 부부장. [사진=촨화그룹 홈페이지]

 중국 차관급 관료가 민간 기업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이윤 공유를 촉구하면서 민영기업가와 외자 기업의 경영간섭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 인터넷을 달군 ‘사영기업 퇴장론’과 더불어 국가가 앞장서고 민간은 물러서는 ‘국진민퇴(國進民退)’ 속도가 빨라지는 분위기다.

“사영경제 퇴장론” 이어 민영기업 경영 간여 본격화 #中 네티즌 “개인기업 말고 국영기업 경영참여 보장” #RFA “대만 기업인 중국 투자 중단 자국 복귀 시작” #트럼프 유엔서 “가난 불러오는 사회주의에 저항을”

문제의 발언은 지난 11일 항저우(杭州)의 민영 석유화학 업체인 촨화(傳化)그룹에서 열린 전국 ‘민영기업의 민주관리 심화, 내부동력의 혁신발전 증강 현장 회의’에서 나왔다. 추샤오핑(邱小平·54)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이하 인사부, 한국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격) 부부장(차관급)이 연설에서 “민영기업은 직원과 노동자를 주체로 삼아 종업원이 충분한 민주권리를 향유하고, 기업 경영에 함께 참여하며, 기업의 발전 성과를 함께 향유해야 한다”고 한 발언이 인사부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추 부부장은 이날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이미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고, 광대한 민영기업은 새로운 발전 환경과 발전 임무에 직면했다”며 “민영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은 성장 이념을 전환해 종업원의 적극성을 최대한 동원하고 민영기업의 민주관리 업무를 추진하며 당의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업이 당 조직의 굳센 지도에 의지할 때만 기업 민주관리의 정확한 정치 방향을 확보할 수 있으며 사무·노동직의 알 권리·참여권·발언권·감독권을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영기업이 아닌 민간기업에 대해 공산당의 지나친 간섭 논란을 부르는 발언이다.

11일 항저우(杭州)의 민영 석유화학 업체인 촨화(傳化)그룹에서 열린 전국 ’민영기업의 민주관리 심화, 내부동력의 혁신발전 증강 현장 회의“ 현장. 이날 회의에서 민영 기업이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되면서 중국 민영 기업이 동요하고 있다. [사진=촨화그룹 홈페이지]

11일 항저우(杭州)의 민영 석유화학 업체인 촨화(傳化)그룹에서 열린 전국 ’민영기업의 민주관리 심화, 내부동력의 혁신발전 증강 현장 회의“ 현장. 이날 회의에서 민영 기업이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되면서 중국 민영 기업이 동요하고 있다. [사진=촨화그룹 홈페이지]

추 부부장의 발언 내용이 19일 신경보 보도로 알려지면서 중국 네티즌들은 크게 반발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선 중추절 연휴 동안 “인사부: 당이 노동자를 지도해 민영기업의 공동 경영과 민영기업의 성장 이윤을 공동 향유할 것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이 광범하게 유포됐다. 인터넷 검열 당국에 의해 삭제되고 있는 해당 글은 “중국 공산당이 노동자로 하여금 민영기업을 접수 관리하고 기업 이윤을 분배하도록 지도한다”는 등 자극적 논조로 추 부부장의 연설을 소개했다.

웨이보에 한 사영 기업가는 “월병(月餠·중국의 중추절 명절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며 “밤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라며 경영 간섭을 우려했다. 아이디 루수이뉴(露水牛)는 “우리는 개인 소유 기업의 경영 참여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우리 모두의 것인 국영기업의 경영 참여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공사합영(公私合營)이란 기치 아래 사유재산을 몰수하려는 것”이라며 1956년 중국이 시행한 강제 국유화 정책의 부활이라는 지적도 등장했다. 최근 “지난 40년 동안 사영기업은 자신의 역할을 완수했다”며 “이제 점차 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경제 칼럼니스트 우샤오핑(吳小平)의 ‘사영 경제 퇴장론’과 맞물려 “우샤오핑, 추샤오핑이 모두 덩샤오핑을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댓글도 등장했다.

양사오정(楊紹政) 구이저우(貴州)대학 경제학원 전(前) 교수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중국 국무원(정부) 3개 부처가 민영기업에 새로운 요구를 이미 제시했고 추가 조치도 나올 것”이라고 폭로했다. 양 교수는 “1978년 중국 경제는 전민소유제 기업과 집체기업 등 모두 공유기업이었다”며 “당시 이들 기업의 관리와 효율이 높았다면 왜 국영기업을 개혁했는가”라며 본격화되는 경영 간섭에 항의했다.

11일 항저우(杭州)의 민영 석유화학 업체인 촨화(傳化)그룹에서 열린 전국 ’민영기업의 민주관리 심화, 내부동력의 혁신발전 증강 현장 회의“ 현장. 이날 회의에서 민영 기업이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되면서 중국 민영 기업이 동요하고 있다. [사진=촨화그룹 홈페이지]

11일 항저우(杭州)의 민영 석유화학 업체인 촨화(傳化)그룹에서 열린 전국 ’민영기업의 민주관리 심화, 내부동력의 혁신발전 증강 현장 회의“ 현장. 이날 회의에서 민영 기업이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되면서 중국 민영 기업이 동요하고 있다. [사진=촨화그룹 홈페이지]

RFA는 중국 정부가 민영기업 정책을 바꾸자 저장(浙江)성에 진출한 대만 기업들이 중국 투자를 취소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중국 기업가는 “대만인들 사이에 안전감이 사라졌다”며 “현재 자본이 대만으로 회귀하면서 여러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19차 당 대회의 ‘당·정부·군부·민간·학계, 동·서·남·북·중까지 당이 모든 것을 이끈다’는 결의에 맞춰 민간 기업 경영에 본격 개입할 분위기다. 지난 11일 현장 회의가 열렸던 촨화그룹은 홈페이지에 당일 회의 내용과 함께 ‘촨화 경험’이라고 지칭한 노동자 경영 참여 실험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쉬관쥐(徐冠巨) 촨화그룹 이사장은 “당과 대중조직은 기업의 건강한 발전의 좋은 도우미이자 동반자로 당 조직의 활동을 지지하고 당 조직이 역할을 발휘하는 것은 과학발전의 필연적인 요구”라고 강조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후 강화되고 있는 사회주의 추세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본격적인 압박도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는 사회주의와 그것이 모두에게 불러올 빈곤에 저항해야 한다”며 사회주의와의 전쟁에 동참을 호소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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