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키즈] 어린이책 인기작가(8) 이상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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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에게 '해맑다'는 수식어는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작가 이상교(54.사진)를 이야기할 때는 이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키 1백79㎝의 해바라기같은 '만년 소녀'.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키우는 꽃 하나, 풀 한포기에도 말을 건다. 틈만 나면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렇게 나온 책이 신작 '안녕하세요, 전 도둑이랍니다'(푸른책들)다. 약간 모자란 서른일곱살의 칠수는 도둑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마음 먹고 들어간 맞벌이 부부의 집이 왜 그리 지저분한지. 뭘 훔치려해도 정리부터 해야할 것 같아 온 집안을 청소해 준다. 비 내리는 날이면 담 위에 걸어놓은 이부자리를 걷어주고 장독 두껑을 닫아준다. 칠수는 이렇게 남의 집에 들어가서도 베란다에서 발을 디디려니 화분의 꽃을 밟을 것 같아 조심조심하는 마음 착한 도둑이 된다.

"도둑이라고 꼭 나쁜 도둑만 있으란 법은 없잖아요."이상교가 칠수라는 독특한 도둑을 만들어낸 이유다. 강화도가 고향이라는 그는 도시 아이들에게도 인간 사이의 따뜻한 정, 자연의 서정성 등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칠수같은 인물이나 동물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이상교는 "소외된 사람들이 바라본 따뜻한 세상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12년 전 출간했던 '옴팡집 투상이'(현암사)에는 초등학교 2학년밖에 다니지 못하고 하루종일 동생을 돌봐야하는 불그죽죽한 얼굴의 투상이란 아이가 나온다. 진희를 좋아하면서도 "새다리"라고 놀리기만 할 뿐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다.

'토끼 당번'(대교출판)에는 동물을 사랑해 토끼 사육장 당번을 하고 싶지만 수줍음이 많아 나서지 못한 종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와 겪는 낯설음, 토끼를 통해 학교와 친구들에게 정을 붙이려는 아이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종묘 너구리'(대교출판)는 아예 동물들이 주인공인 경우다. 먹이를 찾아 종묘로 온 너구리가 다람쥐.청설모.고양이와 어울리는 이야기다. '외딴 마을 외딴 집에'(아이세움)라는 그림동화는 늙은 쥐와 눈이 어두운 할아버지가 나온다.

실장갑을 병든 쥐로 알고 돌보려 데리고 온 할아버지와 실장갑을 치워버리고 대신 병든 쥐 시늉을 하는 쥐의 이야기다. 이 책에는 동시 작가이기도 한 이상교의 아름다운 문장이 잘 살아있다.

그런데 이상교의 작품은 이야기의 결말이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평을 들을 때가 있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들의 심리 상태를 쫓기 때문이다. 어린이 동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그의 작품 중에는 '여운'을 강조한 것이 많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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