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남자 없이는 살아도 영화 없이는 못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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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심영섭 지음, 열린박물관, 264쪽, 1만1000원

영화평론가 심영섭. 영화 팬들은 커다란 정육점용 칼로 쇠고기 근육을 끊듯 단호하게 내리치던 그의 20자평을 아직 기억한다. 그는 필명(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처럼 심리학(영화 치료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을 기반으로 영화 속에 숨어 있는 반여성주의적 요소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왔다. 특히 김기덕 감독 영화에 대한 매서운 공격으로 '김기덕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 그가 에세이집을 냈다. 책은 공격적이지도, 매섭지도 않다. 대신 겁나게 솔직하다. 읽고 나면 유쾌해지고 상쾌해진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자 평론가로 살아가는 '인간 심영섭'의 속살이 드러난다. "남자 없는 삶은 살아봤지만, 영화 없는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영화에 대한 절절한 애정, 혹시나 일감 의뢰가 오지 않을까 싶어 핸드폰을 끄지 못하는 소심함,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지만 밥벌이를 위해 원고지 몇 장을 허겁지겁 메워야 하는 자괴감,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남완석 우석대 교수와 각기 아이들을 하나씩 데리고 재혼해 스텝 패밀리(step family)를 이룬 사연 등을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써내려간다. 책 말미에는 남편과 연애 시절 주고 받은 '닭살스러운' 연서(戀書)까지 천연덕스럽게 공개한다. 못 말리는 솔직함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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