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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선·노동문제 발 벗고 나섰다 88 여성계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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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제13대 총선을 치른 88년은 그 어느 때보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강조된 한해였다. 그러나 6명의 전국구 의원과 1명의 정무 제2장관직에 그쳐 미흡한 수준이다.
여성계 40년 숙원인 가족법 개정은 국회에 상정조차 못했고 발효중인 고용 평등법도 실효성 확보를 위한 법제 보완 요청이 유보된 상태다.
그러나 여성문화운동이 활발해졌고 소비자보호운동이 강화됐으며 여성 노동자와 여성 인권 문제에 관한 혁신적 여성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88년 여성계의 새로운 흐름이었다.

<정치참여>
「여성문제 해결은 여성의 손으로」「더 많은 여성을 국회로 보내 여성문제 해결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여성단체협의회(회장 김경오)가 지원했지만 13대 국회의원에 출마한 13명의 여성은 모두 낙선했다. 결국 여야 합해 6명의 여성만이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고, 각료로는 정무 제2장관직을 조경희씨에 이어 김영정씨가 차지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지난 6월 내무부 지방행정기구 개편으로 전국 14개 시·도에 가정 복지국이 설치된 것이 그런대로의 성과라 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결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법률 개정>
지난 7월 정무 제2장관실 주관으로 열렸던 「여성 정책 과제와 실천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와 지난 10월 제6공화국 들어 첫 번째로 열린 여성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가족법 개정이 한국 여성계 「제1의 현안」임을 다시 확인케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1백50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가족법 개정안은 거창한 정치 현안들에 묻혀 국회상정도 못한 채 다시 89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한편 지난 4월1일부터 발효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실효성 확보를 위해 ▲남녀 차별 정의 규정 신설 ▲남녀간 직종 구분 금지 규정 ▲동일 노동 동일 임금 규정 ▲벌칙 규정 ▲모성 보호 강화 규정 등 법제의 보완이 요청되고 있으나 아직도 유보상태다.

<여성문화>
88년은 책 출판·전시회·마당극 등으로 여성 문화운동이 상당히 활발했다. 지난 11월 한국의 여성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룰 목적으로 주간 여성신문이 창간돼 제5호를 발행했다.
책으로는 『또 하나의 문화』 동인지인 무크지 『지배 문화, 남성 문화』, 여성 문제를 유형별로 다룬 작가 이경자씨의 창작집 『절반의 실패』, 여성운동 노동운동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이소라씨(광주·전남 여성회장) 등 7명 여성들의 성장기인 『서면 뛰고 누우면 호랑이를 꿈꾸는 여성들의 이야기』 등이 있다.
지난 11월 서울 인사동 그림마당 민에서 열렸던 여성해방 시와 그림의 만남이었던 「우리 봇물을 트자」는 10명의 시인과 3명의 화가의 공동작업을 통해 수천 년 간 내려온 여성들의 문제를 호소력 있게 전달해 여성 문화운동의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여성문제만을 공연코자 창단한 극단 미얄(대표 김정자)이 지난 4월 공연한 마당극 『꽃다운 이내 청춘』은 현지처의 비극을, 한국 여성노동자회가 11월과 12월 공연한 『여성노래 한마당』은 노동여성의 문제를 크게 부각시켰다.
주부극단 둥우리는 또한 지난 6월 『표류하는 너를 위하여』란 연극으로 대학입시와 관련된 학교·학부모들의 비리를 파헤쳐 많은 학부모들의 공감을 얻었다.

<교육개선>
과외와 학부모의 돈 봉투 등 한국 교육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키 위한 여성단체의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주부 아카데미 협의회, 한마당교육문화연구회, 한국여성민우회 등은 지난 10월 과외 정책 공개토론회를 열어 학부모들의 과외반대 의사를 확실히 표명했다.
서울 YWCA 또한 지난 11월 「창조적 교육 공정회」를 통해 과열 과외를 우려하는 학부모·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을 발표했다.
서울 YWCA는 이어서 교사-학부모의 관계 정립을 위한 모임을 통해 조사대상자의 90.1%가 교사에게 금전 사례를 한 적이 있다고 발표해 사회의 물의를 빚었다.
이날의 모임은 ▲학군 조정 ▲사립학교 학생 선발권 인정 ▲육성회 및 특별 육성회비 공개 ▲교직자 처우 개선 등 교육제도의 개선 없이는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오가는 돈 봉투를 근절시킬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노동운동>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불어 닥쳤던 노동운동의 열풍은 여성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는 올해의 여성상 수상자가 산업은행 노조 여성부장 이경자씨(43)였고 한국여성단체 연합이 주는 올해의 여성상도 맥스테크사 여성노동자에게 돌아간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여성민우회(회장 이효재)는 지난 4월 안양 그린힐 봉제공장 여공 소사사건 후 「여성노동자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또한 여성에 대한 직장 폭력 추방운동도 벌였다.

<여권보호 운동>
한국 여성단체 연합(회장 이우정)은 지난 9월 『주한 미국 청소년의 한국 임산부 폭행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 12월의 『인신매매에 관한 성명서』 등을 통해 외국인에게 짓밟힌 여성인권, 향락의 도구로 이용되는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을 선언했다.
여성의 전화 또한 안동에서 치한의 혀를 자른 주부의 방어가 과잉방어라고 한 법정판결에 항의하는 사회여론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그밖에 종래에는 남성들이 이끌어 온 통일 논의에 여성단체도 관심을 기울여 각종 세미나를 개최해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을 폈고, 기장 여신도회 등은 구체적으로 북한 교회 성찬 집기류 보내기 운동과 교회 여성 만나기 운동을 펴고 있어 눈길을 모았다.

<소비자보호운동>
소비자보호운동 차원에서 볼 때 올해는 분명 「도약의 해」였다.
외형적으로는 나름대로 소비자운동을 벌여오던 10개 민간단체가 소비자보호 단체협의회를 정점으로 천하통일을 이루었으며 내용 면에 있어서는 정책의 입안·결정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지금까지 사후약방문격이던 소비자보호가 사전처방이 될 수 있게끔 했다.
그러나 86년 소비자보호법 개정 이후 민간단체들이 끈질기게 추진해온 소비자보호법 재개정은 올해도 실현되지 못한 채 내년으로 넘겨졌으며, 81년 제정된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전세 입주자들에 대한 실질적 보호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 개정 작업 및 방문판매 문제 해결을 위한 할부 매매법 제정 등도 숙제로 남겨졌다.
소비자보호단체 협의회 설립 10주년이기도 한 올해 소협은 「환경감시의 해」를 내걸고 환경보전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 3월15일 전국 12개 지역에서 쓰레기 수거 캠페인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환경오염·식품공해를 주제로 한 20회의 소비자 교육 및 식수·세제에 대한 모니터 조사를 함으로써 소비자들의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한편 추곡수매가격·농축산물 수입·쇠고기 부위별 판매·금연운동·주택 임대차·방사선 조사 식품·생수의 국내시판 허용문제 등을 다루는 정부 해당부처의 위원회 및 간담회에 소비자 대표가 직접 참여,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정책 결정에 소비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기도 했다.
이에 발맞춰 한전·은행 등 공공기관에서도 소비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냈으며 평화민주당은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소비자보호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나서는 등 소비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뚜렷이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소비자 단체들이 특정문제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얕아 「열려진 문호」만큼 제몫을 다하는데는 역부족이라는 자평도 뒤따랐다.
소협 산하 10개 민간단체를 통해 접수된 소비자 고발은 11월말 현재 7만6천4백70건. 품질에 대한 불만이 45.8%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계약·약관(14.9%), 서비스(13.8%), 가격(6.8%), 계량(1.9%)의 순으로 집계됐다.
지방소비자들의 고발은 금년 총 고발건수의 50.2%를 차지, 지난해에 이어 계속 서울 소비자 고발을 앞질렀다. 이 같은 지방 소비자들의 권리 인식은 내년부터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민간단체의 고발센터는 전국22개소에 불과하며 이 또한 대·중 도시에만 몰려 있어 한시 바삐 지방조직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이 과제로 주어졌다.
이와 함께 정책 입안·결정 과정에서 충실한 소비자의 대변자가 되기 위해 각 단체별로 전문분야를 확보해 가는 내부 정비 작업도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금옥·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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