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판 거한" 이봉걸|「재기의 샅바」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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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씨름판의 「인간 기중기」이봉걸(31)이 부상 8개월만에 다시 모래판에 우뚝 선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람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커다란 체구에 비례해 성격도 대범한 듯 말수가 적은 이봉걸은 내년 1월3일 벌어지는 신정 통일천하 장사대회에 출전신청을 제출하고 판교의 럭키금성 연수원내 비닐하우스 연습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숙적 이만기와의 한판대결이 이뤄질 것인지,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지가 팬들의 관심. 『지난 10월 하순부터 팀에 합류해서 동료들과 똑같이 훈련하고 있습니다.』
아침 6시에 기상, 3㎞정도의 로드웍과 11시부터 2시간동안 영동 헬스센터에 나가 웨이트트레이닝, 그리고 오후엔 매일 50∼60판 정도의 실전기술 훈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 오고 있다.
이봉걸의 주된 실전기술 연습상대는 해체된 보해양조 팀에서 올해 럭키금성 팀에 입단한 황영호(26).
『실전훈련이라고는 해도 몸이 완전한 컨디션일 때처럼 1백% 정상적인 훈련은 못하고 있어요. 씨름이라는 운동은 서너 달만 쉬어도 감각이 없어져 버리는데 봉걸이는 1년 가까이나 샅바를 놓고 있었으니 우선 감각을 되찾는 것이 선결 과제예요.』
연습장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 선수들의 한판연습이 끝날 때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기술지도를 해주던 이중근 감독은 이봉걸의 재기에 대해 낙관한다.
키가 2m5㎝, 체중이 1백30㎏이 넘는 이봉걸도 단신(?)의 이감독(1m67㎝) 앞에서는 한 마리 순한 양.
숭글숭글 솟아나는 땀방울을 훔치면서 이봉걸은 연신 「예」 「알았심더」 두 마디 뿐이다.
『봉걸이가 민속씨름 초반에는 자신을 갖지 못해 수비형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체력이 좋아지면서 공격씨름으로 바꿔 상대방을 들어올리는 「드는 씨름」으로 변하면서 천하장사를 먹었지요. 절정에 오르는 순간 무릎을 다쳤기 때문에 완쾌됐다고는 해도 앞으로는 드는 것보다는 호흡을 사용해서 반템포 죽이는 공격적인 씨름을 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봉걸은 공격형으로 스타일을 바꾼 86년 중반 제22회 체급대회 백두장사를 비롯, 10대 천하장사에 올랐고 87년 신정장사, 12회 천하장사(3월), 28회(5월)·31회(10월)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눈부신 성적을 거둬 87년 한해동안 32승7패, 승률 82.1%로 씨름판의 대명사인 이만기(현대)와 공동1위를 마크했었다.
상금에 있어서는 4천2백10만원으로 이만기(2천8백30만원)를 훨씬 능가했었다.
그러나 88년4월 부산 동아대에서 전지훈련 중 동료인 김성우(23)와의 실전연습에서 오른쪽 무릎연골이 파열돼 수술을 받았고 「씨름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좌절 속에서 실의에 찬 시간을 보내왔다.
『승패는 차치하고 씨름판에 다시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봉걸의 말처럼 89년 벽두에 선보일 「이봉걸 재기여부」는 「이만기 독식」에 식상한 많은 씨름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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