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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금 빼줄 돈은 1주택자도 주담대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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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세 수요가 많은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전세 수요가 많은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지방에서 근무하느라 본인 소유의 서울 마포구 32평 아파트를 5억7000만원에 전세로 주고 있는 A씨는 ‘9·13 부동산 대책’ 이후 걱정거리가 생겼다. 세입자 B씨로부터 “계약 만료 후 이사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에서 1주택자라는 이유로 덜컥 대출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9·13대책 전 반환 계약분도 적용 #세입자·집주인 잔금 걱정 덜게 돼 #2주택 임대인 담보대출은 막아놔 #‘보증금발 신용 경색 위험’ 여전

최악의 경우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아야만 이사하는 곳의 잔금을 치를 수 있는 B씨의 고민도 깊어졌다.

다행히도 은행연합회가 “1주택자라도 임차보증금 반환 용도의 주담대는 받을 수 있다”고 ‘유권해석’하면서 둘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은행연합회가 17일 배포한 ‘은행권 실무 FAQ’에 따르면 고가주택(공시가격 9억원 초과)이 아닌 경우 1주택자라도 빌려준 본인 주택에 전입하거나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하기 위해 기존 세입자에게 임차보증금을 반환할 용도로는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고가주택의 경우에도 1주택자가 본인 주택에 들어갈 목적으로 세입자에게 임차보증금을 반환할 때는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1주택자가 해외 근무 등 불가피한 사유로 입주가 어렵거나 이에 준하는 사유가 명백하다고 입증하면 예외도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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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발표일(13일) 전에 임차보증금 반환 관련 계약을 맺은 경우에도 돈을 빌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세입자와 전세금 3억원의 계약을 맺었던 집주인이 지난 5일 새로운 세입자와 보증금 1억원, 월세 60만원의 새 계약을 맺었다면 전세보증금 반환에 필요한 2억원을 마련하기 위한 주담대 신청은 13일 이후에도 가능하다.

1주택자의 임차보증금 반환 용도일 경우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40%, 조정대상지역에는 LTV 60%·DTI 50%의 규제가 적용된다.

1주택 임대인의 숨통을 틔워준 건 ‘전세보증금발(發) 신용경색’의 위험성 때문이다. 1주택자 임대인의 주담대가 막히면 보증금 반환 지연이나 불이행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세입자의 다른 부동산 계약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전세자금대출 상환도 어려워져 부동산 시장과 금융 시장의 일대 혼란으로 번질 수 있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3월말 기준으로 시산한 전세보증금(보증부 월세 포함) 규모는 687조원에 이른다. 전세가구 보증금은 전체의 75%인 512조원이다. 이 중 일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신용경색 현상이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퍼져갈 수 있다.

자산대비 부채비율 100% 초과 임대가구 비중. 자료: 한국은행

자산대비 부채비율 100% 초과 임대가구 비중. 자료: 한국은행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주택자의 보증금 반환용 주담대 허용에도 불구하고 ‘전세보증금발 신용경색’ 위험성은 여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장 보증금 반환용 주담대 허용 대상에서 제외된 2주택자가 뇌관으로 지목된다.

본인이 사는 집 외에 서울 방배동의 32평 아파트를 5억원에 전세로 주고 있는 은퇴자 C씨가 그런 경우다. 12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현 세입자가 집을 빼겠다고 알려왔지만 기간 내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조달할 길이 없다.

한은에 따르면 금융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100%가 넘는 다주택 임대 가구는 전체 임대 가구의 34%에 이른다.

전셋값이 급락하거나 대출이 막히면 유동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미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지방 부동산 시장에서는 ‘역전세난’과 함께 임차보증금 반환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황규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건설부동산 부문 수석연구원은 “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까지 막는 건 결국 ‘다주택자는 집을 팔아서 보증금을 돌려주라’는 뜻”이라며 “자칫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집을 구하지 못하는 등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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