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월북인 작품 해금 바로잡은 「절름발이 음악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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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해 음악계는 사상 최대로 풍성하고 내실 있는 수확을 거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계의 숙원이던 납·월북작가의 해금, 공산권 연주단체들의 첫 내한공연으로 이데올로가의 벽이 허물어졌다. 또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라 스칼라 오페라단 등 세계정상의 연주단체·연주가들의 화려한 공연이 풍성하게 펼쳐졌고 예술의 전당·국악당 등 훌륭한 연주공간도 마련됐다.
이같은 외형적 성과 외에도 특정 작곡자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주하는 테마연주회가 잇따라 열렸고 음악극 『구로동 연가』등 현실참여 예술활동도 시도되는 등 많은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10월27일은 우리음악사에 있어서 큰 분수령을 이룰 역사적인 날이었다.
정부는 이날 김순남·이건우 등 납·월북 음악인 51명의 해방전 작품을 전면 해금, 반쪽으로만 이어져온 우리의 현대 음악사가 제자리를 찾게 됐다.
이와 때를 맞춰 「김순남·이건우 가곡연구발표회 」등 납·월북음악인의 작품연주회와 악보집 출반 작업이 펼쳐지면서 우리 민족음악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또 모스크바 필하머니를 비롯, 모스크바 방송합창단, 「루드밀라 남」「넬리 이」등 한국계 소련음악가, 상해 현악 4중주단, 헝가리 실내악단 등 공산권 연주단체·연주가들의 잇따른 내한공연은 우리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같이 국내외적으로 문호가 활짝 개방됨으로써 우리 음악계는 해방 후 처음으로 문화적 균형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우기 지난 7월 재독작곡가 윤이상씨가 남북합동음악대제전 개최를 제의함으로써 남북음악인들이 한데 모여 분단의 벽을 직접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올해는 올림픽 문화행사를 계기로 그 어느해 보다 많은 연주단체·연주가들이 공연을 펼쳐 음악팬들을 바쁘게 한 한해였다.
특히 43억원이란 엄청난 비용을 들인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페라단의 공연은 최고 12만원이나 되는 입장권이 매진되는 등 대단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새로운 연주공간의 확장은 음악계의 큰 수확으로 손꼽힌다.
최신 음향시설과 규모를 갖춘 예술의 전당 음악홀과 국악당의 개관은 음악인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으며 2백석 규모의 작은 음악공간인 예음홀도 새롭게 마련돼 실내악연주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같은 연주·공연 쪽의 활기에 비해 창작부문에서는 예년과 같이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국악분야는 특히 일련의 올림픽 문화행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새삼 우리 전통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을 갖게 했으며 외국인들에게 우리 예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한 몫 해냈다.
그러나 이같은 좋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좀더 새롭고 세계적인 공연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각 국악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국악동요·창작국악 등 국악의 현대화·대중화를 활발히 시도했던 점이 주목되는 한해였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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