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기업 넷 중 하나 직원들 메일 감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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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금융그룹인 '미쓰비시UFJ 파이낸셜 그룹'의 직원들은 회사 PC를 통해 e-메일을 보내기 직전 한 가지 절차를 더 밟아야 한다. '받는 사람'난 밑에 있는 '참조(CC)'란에 직속 상사의 메일 주소를 입력해야 하는 것이다. 수신자에게 가는 메일 내용을 상사도 받아보게끔 하는 것이다.

'참조'란에 상사의 메일 주소를 넣지 않고 송신하면 메시지는 '주의환기'란 말과 함께 되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참조란을 입력하시오"란 명령이 떨어진다. 이런 장치는 사규로 정해져 있다.

회사 측에선 "직원이 보낸 메일을 상사가 다시 확인함으로써 혹시 틀린 내용이 있으면 바로잡아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사내 정보 유출을 막고, 회사 PC의 사용화(私用化)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회사 직원들은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불만을 터뜨린다. 다른 은행 직원들은 "혹시 우리 은행도 미쓰비시UFJ처럼 하는 건 아닐까"라며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민간 조사기구인 '노무행정연구소'는 18일 "일본 대기업의 25%가량이 정보 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사원의 개인 e-메일 내용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올 2~3월 상장사와 자본금 5억엔 이상, 직원 500명 이상의 비상장사 등 139개사를 대상으로 e-메일 감시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조사 결과 직원이 1000명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 86%가 "어떤 형태로든 e-메일의 사적 이용과 정보 유출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복수응답을 받은 결과 1000명 이상 대기업의 75%는 "직원들의 e-메일 송.수신 상황을 회사 서버에 보존한다"고 답했다. 직원들의 e-메일을 감시한다고 답한 기업(25%) 중에는 '매일 조사한다'는 회사가 42%에 달했다.

e-메일 감시를 통해 사내 기밀정보를 유출했거나 공개한 직원에 대해서는 52%가 징계나 심하면 해고조치를 취한다고 답했다. 회사에서 성인 사이트를 들락거리거나 개인 e-메일을 지나치게 자주 이용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견책이나 주의 조치를 취한다는 기업도 절반에 달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기업들이 정보 관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고객 정보를 비롯한 사내 기밀의 유출을 막기 위해 인터넷 감시에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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