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우체국·도서관 한 곳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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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좋은 물 미역 좀 사 가시오.』
『생선 물거리 좋십니더. 헐케(값싸게) 드림니더.』
아파트군이 임립한 상·중계단지 입구 도로에는 매일 오후 노점상들이 성시를 이룬다.
생선·채소상을 비롯, 과일·의류상 등 다양한 생필품·식료품을 들고 와 판다.
90년까지 37만 입주예정에 이미 13만명이 들어 살고 있지만 제 모양을 갖춘 상가나 시장 하나 없자 노점상들이 상가기능을 담당하고 나섰고, 주민들 또한 대부분 이들을 통해 반찬거리등 식료품을 조달한다.
『슈퍼마킷에 가봤자 찾는 물건이 제대로 없을뿐더러 노점상이 값도 헐하고 물건도 싱싱해요.』 주민 김순자씨(34·여)의 주장.
『상가뿐 아니라 종합병원 하나 없고 극장 같은 문화시설이나 운동장을 포함한 체육시설은 처음부터 기대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읍니다.』
또 다른 주민 이철수씨(32)의 불평.
우체국도 없고 학생들을 위한 독서실·도서관도 없고 교육시설도 절대 부족이다.
주공·토개공이 장삿속에 집을 짓고 택지를 개발, 주민생활에 필요한 이같은 편익시설이 들어설 땅을 처음부터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에게 주공·토개공은 「파렴치한 집 장수·땅 장수」로 불린다.
◇노점상=노점상들이 성시를 이루는 곳은 노원역에서 상계6단지로 이어지는 길목과 3단지 옆 보훈연금매장 주변 공터, 중계동 현대·극동아파트입구 부근 등 수 없다.
리어카 또는 좌판노점상에, 아예 가건물을 지어 영업하는 곳도 많다.
포장마차나 액세서리 판매상들이 아니라 대부분 생필품만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 노점상들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5월을 전후해 급격히 늘어난 노점들은 목 좋은 곳은 이미 5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까지 붙은 상태에서 하루 수입은 2만∼3만원이상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6단지 입구에서 노점상을 하는 박순희씨(47)는『상계시장에서 좌판노점을 하다가 지난 7월 벌이가 좋다고 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며 『전철을 이용하는 맞벌이 부부가 퇴근시간에 주로 몰린다』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비돼야할 대상이다.
◇판매시설 부족=23일 오후4시 상계주공 3단지 옆 보훈연금매장.
연면적 4백평의 5층건물은 7백명이 넘는 손님들로 북새통이다.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든 매장 한목에는 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계산을 하기 위해 20m도 넘게 줄을 서있다.
생필품에만 한정된 단지 내 상가 외엔 별다른 판매시설이 아직 들어서지 않아 빚어지는 현상. 보훈매장 이용객들 중에는 이곳을 출입할 수 없는 일반 주부들도 많았다.
상·중계지구를 통틀어 대형판매 시설은 중계1지구에 지난 17일 개점한 한신코아백화점 하나 뿐. 때문에 『김장을 하거나 쇼핑을 하기 위해 멀리 청량리·제기동·공릉동까지 나가 장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주민 이영희씨(여·26)는 말한다.
◇문화·체육시설 부족=상계지역에 부동산소개업소 다음으로 재빨리 자리잡은 것은 비디오테이프 임대가게들.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극장이나 연극공연장 하나 없어 이용고객들이 더욱 많다.
서점도 거의 없어 시내로 나가는 가족에게 부탁,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봉고차를 이용한 이동도서관이 성업중이다.
운동장도 하나 없고, 대신 이용할 수 있는 학교 운동장도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
다만 테니스장이 단지마다 1∼2면씩 설치돼있으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아예 이용해볼 생각조차 못한다.
◇교육시설 부족=『10월말 이사온 뒤 열흘동안은 전에 살던 개포동까지 2시간씩 걸러 통학 시켰어요. 그후 30분 거리의 노원학교에 한 달 남짓 더부살이하다가 지난 10일에야 단지 내 상경국교가 생겨 다시 전학을 했지만 2달 새에 2번씩이나 옮기며 아이들 공부는 엉망이 돼버렸어요.』
국민학교 4,5학년생 자녀를 둔 16단지 주민 이영옥씨(36·여)의 푸념.
인구 13만에 국교7개교가 겨우 들어서 있는 이곳 주민들은 올 한햇동안 대부분 비슷한 체험을 해야했다.
학교보다 집부터 먼저 들어선 때문.
지난 3월 가장 먼저 2단지에 들어선 「원조」격인 당현국교는 학생수 7백24명으로 출발했으나 4월 개교식 때는 1천5백여명으로 2배로 늘었고 6월엔 3천명까지 늘며 갖가지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한때 학급인원이 98명까지 이르러 전입생들에게는 각자 집에서 의자를 갖고 오게 해 높은 것. 낮은 것·둥근 것 등 갖가지 모양의 의자를 책상도 없이 사이사이에 끼웠으나 나중엔 의자 놓을 자리도 없어 쩔쩔매야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고 이 학교 교사들은 털어놨다.
시교위는 황급히 걸상 4백개를 지원하고 교사15명을 긴급 배치, 15개반을 분반했으나 이제는 교실수가 부족해 1,2학년은 오후수업을 해야하고 운동장 한편엔 비·햇빛을 가리는 「오후반 대기소」가 세워졌다.
7월 4단지에 상수국교가 문을 열면서 5백여명이 전학, 다소 숨통이 트이는가 했으나 빈 아파트가 속속 채워지며 학생수가 3천2백명으로 다시 불어났다.
4∼6학년은 70명 이상씩으로 분반이 불가피한데다 내년엔 6학년 4학급대신 1학년 14학급이 입학해 부랴부랴 교실12개를 새로 지었으나 내년 1학기까지는 오후반이 계속될 전망.
『1백m달리기는 운동장이 좁아 대각선 코스로 뛰는데 결승선에서 다른 친구들이 손으로 막아줘야 벽에 안 부딪쳐요.』
애당초 규모가 작게 계획돼 건립된 상계고교는 지난 한햇동안 신설학교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어야 했다.
특히 예산부족을 이유로 당초 12학급계획이 10학급으로 줄며 정원에 묶여 이사를 와도 전입이 막혀있기 때문에 근처에 다른 고교가 생길 때까지 원거리 통학하는 학생도 부쩍 늘었다.
90년까지 30만 수용계획으로 국교18, 중학9, 고교8개교 등 35개교가 계획돼있으나 현재 개교한 수는 국교7, 중학3, 고교3개교 뿐으로 그나마 18개교는 부지확보뿐 착공도 못한 상태.

<특별 취재반>
김두자기자 민병관기자 이철호기자 오형환기자 유상철기자 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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