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구원과 남북화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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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평양에 새 교회와 성당이 건립된 데 뒤이어 로마 교황 「요한·바오로」2세와 어쩌면 서울 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이 내년 10월 평양을 방문하게 될지 모른다는 소식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 소식은 종교의 정신적 구원의 역할을 지금까지 이념상의 이유로 억제해온 북한이 그런 입장을 되돌림으로써 서방세계에 대한 문호개방을 예고하는 것으로 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식이 갖는 1차적인 의미는 유물사관의 엄격한 통제아래서 현세적 삶에서 오는 영혼의 고통과 갈등을 종교생활을 통해 위안 받을 수 있는 길을 박탈당해온 북한 동포들에게 영적 귀의의 길을 열어 주었다는데 있다. 성탄절을 맞은 이 시기에 있어서 그런 의미는 더욱 강조할만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한된 수의 신앙인들이 느낄 그러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 이 소식을 북한사회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광범한 변화의 분명한 징표로 평가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남북한은 다같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굳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대방에 대한 독선적 시각에 스스로 노예가 되어왔었다. 그런 굴절된 시각은 권력자들의 의도된 조작에 의해 더욱 증폭되면서 거의 비합리적이고 본능적인 부신과 상호 공포심을 키워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비정상적 상태는 남북한이 다같이 일상적 희로애락의 순박한 동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같은 동포들의 집단이라는 자명한 상식을 잊게 하고, 마치 두 사회가 서로 상대방의 몰락만을 추구하는 기계적 조직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기도 했다.
종교적 교류를 포함한 남북한 상호간의 개방은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이제 너무 오래 남북한 관계를 압도해온 「시저의 것」은 뒤로 물리치고 민족적 동질성이 훨씬 더 큰 비중으로 남아있는 국민대국민의 관계가 전면으로 나와 양쪽간에 올바른 균형을 잡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사회의 「침묵의 교회」가 실질적 형태로 되살아나고 그것을 계기로 남북한간에 인적, 문화적 교류가 확대될 경우 지금까지 탐색단계에 있는 정치·군사적 공존체제로의 노력도 큰 활력을 얻게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 기대에서 우리는 북한이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보다 폭넓고 확실한 종교자유의 길을 옅어주기를 바란다. 북한은 46년 토지개혁 정책에 따라 각종 종교기관 및 단체가 소유한 땅 1만4천4백ha를 몰수한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또 종교자유의 법적 보장은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신앙활동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러졌다.
북한이 우리의 기대대로 교회와 성당의 건립을 통해 상징 아닌 실질적 종교의 자유의 길을 열려한다면 그런 과거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구체적 행동으로 표시해야 될 것이다. 북한의 모든 신앙인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고 교황의 평양방문뿐 아니라 보다 폭넓은 남북한 종교인들의 자유로운 교류를 의해 문을 열어야할 것이다.
그러한 조치야말로 남북한 관계를 대결 아닌 공존과 화해의 방향으로 물어가겠다는 의도를 가장 설득력 있게 입증할 수 있는 손쉬운 길임을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의 계절인 성탄절을 맞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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