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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진로교육'을 강화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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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2008학년도 대입에선 수능 비중이 약화되는 대신 다른 전형요소가 강화된다. 약화된 수능의 자리를 교육인적자원부는 고교 내신으로, 대학은 통합교과형 논술로 대신하기를 바란다. 가장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자료인 내신은 학교 간에 실재하는 격차를 반영하지 못하고, 전국단위로 신뢰가 있는 수능은 9등급만 제공돼 전형 정보가 제한되고, 논술은 수험생의 통합교과적 글쓰기 능력을 잘 보여주지만 고교 과정을 넘어선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도 이들 전형 3요소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면이 있어 주요 대학들은 특히 정시모집에서 이를 조합해 사용한다. 수시모집에선 내신을 주된 전형자료로 활용한다.

내신 비중을 높여 학교교육을 강화하려는 정부 방침은 기본적으로 올바르다. 상대 비교한 교과성적 위주로는 예술.체육활동 및 성장과정을 확인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학교생활기록부가 가장 낫다. 대학은 학생부를 좀 더 전문적이고 다각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주요 대학은 내신 1~2등급에 해당하는 10% 정도 외에는 확대 사용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학은 나름의 잣대로 내신을 가공할 수 있어야 비중 있게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며, 이를 대학의 고유권한으로 인정해 주기 바란다.

대입을 둘러싼 우리 교육의 질적 성장 과제는 여전하다. 특히 대입정원보다 입학자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대학이 대학수학 능력과 무관하게 입시경쟁을 높여 학생 모집에만 골몰하고, 교차지원과 같이 최소한의 공부만 하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고교.대학은 물론 국가 장래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학은 전공.학부.계열별로 선수학습에 대한 주문을 고교와 수험생에게 분명히 해야 한다. 85%가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에서 고교에선 진로 지도와 대학입학 후 성공적 학습을 위한 선수학습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적성에 맞는 진로교육을 받은 학생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고 품성 형성도 안정적으로 이뤄진다. 인성교육과 입시교육의 과도한 이분법은 오해에 불과하다.

진학준비 교육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학생마다 소질.적성.능력.진로가 다르고, 대학 학습에 필요한 선수교육에서 차이가 나는데도 고교.대학 간 비협조로 인해 불필요한 전면 경쟁과 획일적인 과잉학습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고교 자연계에서 수학을 가장 잘하는 학생은 수학을 거의 공부할 필요가 없는 의과대에 진학한다. 선수학습과 무관한 현재의 입시는 대학수학 능력에 미달하는 고졸자를 양산하고 대학 교육의 질조차 떨어뜨린다. 국어.영어.수학의 동일한 잣대로 학생을 전면 경쟁시키면 과잉 또는 과소학습의 폐단을 불러온다. 적재적소형 인재 양성도 되지 못하고, 과도한 사교육으로 아이들의 인성만 뒤틀린다.

교육부.대학.고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부분은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주는 진로교육이다.

일부 대학이나 학과에 맞출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대학 진학 후 성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선수학습을 고교에서 갖추도록 길잡이를 잘하는 것이다. 교육부.대학.고교 대표자들은 협의해 선수학습이 같은 모집단위를 새로 묶고, 적절한 진학준비 학습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고교.대학교육은 충실해지고, 개인적.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공부와 인간 형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교육과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