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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성역화’된 소득주도성장, 현실 진단마저 왜곡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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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금융감독원이 자영업자 애로에 대해 최저임금 영향을 언급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가 뒤늦게 이 부분을 삭제한 뒤 다시 배포해 논란이다. 자금난에 빠진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 지원 프로그램인 ‘개인사업자대출 119’ 이용이 올해 크게 늘었다는 자료였다. 당초 보도자료에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경영 애로를 겪는 한계 개인사업자”라는 표현을 썼다가 재배포한 자료에는 이를 뺐다.

금감원은 “해당 문구는 실증된 분석 없이 나온 설명이었다”고 삭제 이유를 설명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주류 경제학계와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레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놓지 않는 청와대의 기류를 의식했을 것이다. 각종 경제 부작용을 외면한 채 아집과 독선에 가까운 청와대의 태도가 소득주도 성장을 일종의 성역으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와중에 소득주도 성장 설계자인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자영업자 어려움의 이유를 소득주도 성장이 아니라 경제 구조 탓으로 돌렸다. 최저임금 영향이라기보다는 사라진 대기업 낙수 효과와 과당 경쟁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용 참사를 날씨와 인구구조 탓으로 돌리던 정부 설명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어제 발표한 ‘경제동향 9월 보고서’에서 최근의 고용 쇼크에 대해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 상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직접 명시하진 못했지만,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영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최근 갑작스러운 통계청장 경질로 ‘코드 통계’ 논란까지 일었다. 검증 안 된 경제 실험을 계속하느라 각종 무리수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애써 제대로 된 진단을 피하고 있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이 바로 나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