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왜곡된 인식으로 비호감 자초하는 보수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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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어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는 등 하루 종일 대구·경북(TK) 지역을 돌았다. TK가 지역구인 의원과 지방 의원 등 50여 명도 함께했다. 김 위원장이 당 지지세가 강한 대구와 구미를 찾은 건 취임 후 처음이다. 추석을 앞두고 텃밭 민심을 살피겠다는 뜻인 만큼 TK 방문 자체를 탓할 건 없다.

문제는 한국당이 추구하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가 과연 무엇이냐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줄곧 문재인 정부와 함께 박정희 정부 시절 국가주의를 비판하며 거리를 뒀다. 심지어 취임 초엔 당 대표실에 걸린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내리는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하다’는 평소 주장에 따라서였다.

하지만 이날 TK 방문에선 비대위 발언 때마다 강조한 국가주의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새로운 성장 모델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다음 주 초면 출범 두 달을 맞는 비대위다. 딱히 성장 모델이 아니어도 국민 피부에 와닿는 실체적 개혁이 전무하다. 개혁 요체인 인적 청산은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 정책을 국가주의라고 비판했지만 고용이든, 부동산이든 문재인 정부의 국정 폭주에 맞설 대안과 비전은 없다.

오히려 지도부가 ‘자녀 1명당 1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출산주도 성장론’과 ‘요즘 젊은이들은 내 행복이 중요해 애 낳는 것을 꺼린다’는 뒤처지고 왜곡된 인식으로 비호감의 존재감을 키우는 중이다. ‘돈 줄 테니 애 낳아 키우라’는 식의 낡고 해괴한 인식이다.

그러니 대통령과 여당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10%대 지지율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 적당히 개혁 시늉만 내면서 철 되면 텃밭 민심에 기대는 식이라면 한국당은 물론 한국 정치도 희망을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