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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삼아” 문건파기 변호사, 영장심사 중 판사에 구명 e메일

중앙일보

입력

지난 9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지난 9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대법원 자료를 들고 나갔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파기한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가 압수수색 영장심사가 진행되는 중에 현직 판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는 e메일을 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거래 및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수사선상에 오른 전·현직 판사들이 e메일을 이용해 수사를 방해한 정황으로 보고 증거인멸에 현직 판사들도 관여했는지도 조사할 방침이다.

"대법에서 가져온 자료, 선임연구관 시절 개인적 자료" #검찰, e메일이 압수영장 기각에 영향 미친 것으로 의심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유해용(52) 변호사는 전날 현직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내 억울함을 호소했다. 유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인 김영재 원장 측 특허소송과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에서 선임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수집한 자료들을 무단 반출한 혐의에 대해서는 “법원에 근무할 때 습관처럼 작성·저장했던 자료들 중 일부를 추억 삼아 가지고 나온 것”이라며 “부당한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법원 등에 따르면 유 변호사는 또 검찰이 의심하는 공무상비밀누설·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가지고 있던 자료들 중 상당 부분은 개인의견을 담은 자료로서 공무상 비밀이나 공공기록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판결서 초고라고 표현된 의견서 역시 거의 대부분 이미 판결이 선고된 사건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이 역시 연구관이 작성한 초안에 제가 의견을 추가해 기재한 것으로 미완성 상태의 문서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유 변호사는 문건이 무단 반출된 사실이 처음 드러난 지난 5일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별건 수사 의도가 명백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검찰이 김 원장 측 소송 관련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만 가져와서 PC에 저장된 파일을 확인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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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유 변호사가 최대 수만 건의 재판연구관 보고서와 판결문 초고 등을 출력물 또는 파일 형태로 보관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7일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은 유 변호사가 e메일을 돌린 뒤인 10일 오후 늦게 기각됐다.

검찰은 서울중앙지법이 압수수색 영장 발부 여부를 나흘째 검토 중인 상황에서 유 변호사가 현직 법관들을 상대로 일종의 구명 운동을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e메일은 현재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법관에게도 일부 발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문건 파기를 전후한 유 변호사와 법원행정처의 접촉을 비롯해 전날 전송된 e메일이 압수수색 영장 기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유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대법원 재판자료를 반출 소지한 것은 대법원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는 않는다”라는 이유를 들어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2014년 유 변호사가 선임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할 당시 재판연구관으로 함께 근무했다. 박 부장판사는 2013년 2월에, 유 변호사는 2014년 2월에 대법원으로 발령받았다.

11일 오전 검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서울 서초구의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무실로 한 관계자가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검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서울 서초구의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무실로 한 관계자가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검찰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에 있는 유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박 부장판사는 전날 압수수색 영장을 대부분 기각하면서 특정 사건번호로 검색해 나오는 통진당 소송 관련 문건에 대한 압수수색만 허용했다. 유 변호사는 지난 대선 전후 드루킹 김동원(49·구속기소)씨와 공모해 댓글을 조작한 혐의 등을 받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변호인단에서도 지난 10일 사임했다. 유 변호사는 김 지사 변호인단 중 유일한 판사 출신이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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