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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기각 후 파쇄·분해된 증거들…윤석열 "지위고하 막론 책임 묻겠다"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뉴스1]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뉴스1]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전직 판사가 기밀 자료를 무단 반출·파쇄해버린 것과 관련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놨다.

윤 지검장은 10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오후 9시쯤 기자단에게 전달됐다.

윤 지검장의 이런 반응은 30분 전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오늘 유해용 변호사에게 전화해 문의했더니 '압수수색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 출력물은 파쇄했고 컴퓨터 저장장치는 버렸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힌 것에 따른 반응이다. 법원행정처는 "유 변호사가 이같은 사실을 검찰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서울중앙지검에 이런 경위와 내용을 알렸다"고 했다.

10일 중앙지검장 '한밤의 입장표명' 배경은

오후 6시 법원, 유해용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법원에서 근무할때 얻은 자료 목록을 작성해 제출할 수 있는지' 문의. 유 변호사는 "압수수색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 출력물은 파쇄, 저장장치는 분해해 버렸다"고 답변.

오후 7시검찰, 기자들에게 "유해용 변호사 무단반출 대법원 재판자료에 대해 재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이 사실상 모두 기각됐음"을 알리며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위반·절도·정보통신망법위반·공무상기밀누설·공공기록물위반 등 형사처벌 대상 여부를 가리기 위한 수사가 필요한 사안" 주장.

오후 7시 40분 검찰, 기자들에게 "유 변호사 무단반출 자료는 통진당 소송 개입·강제징용 소송 개입·전교조소송 개입 등 다수 중대 혐의에 대한주요 증거이므로 자료를 보강해 압수수색영장을 다시 청구해 확보할 계획임" 밝혀.

오후 8시 10분 법원, 검찰에 전화 걸어 유 변호사와의 통화 내용 및 통화 경위 알림.

오후 8시 30분 법원, 기자들에게 유 변호사와의 통화 내용 및 이를 검찰에 알렸음을 전달.

오후 9시 검찰, 기자들에게 중앙지검장 입장 전달.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

앞서 대법원의 재판거래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유 변호사의 사무실 등에 대해 3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거의 모두 기각됐다. 세번째인 10일에도 1개 자료를 제외하고 주요 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유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4~2016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냈다. 지난 2월 법원을 나와 변호사로 개업한 그가 최근 문제가 된 것은 연구관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진당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에 관한 의견(대외비)' 문건을 받아봤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석재판연구관은 대법원 재판을 총괄 검토하는 자리기 때문에 실제로 그가 이런 문건을 받아본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검찰이 주장하는 '법원행정처의 대법원 재판 개입'에 무게가 실린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부장판사는 이날 유 변호사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전 연구관이 대법원 재판 자료를 반출·소지한 것은 대법원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며 "이런 자료를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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