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민홍구씨 체류허가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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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격적인 일본정부의 민홍구씨 체류허가 발표는 최근 일본이 대북한 접근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취해졌다는 점에서 일단 관심을 모은다.
일본정부는 민씨에 대한 특별체류허가가「인도적이며 법적인」취지에서 취해졌다고 배경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실명은 이미 민씨가 83년 11월 북한을 탈출, 일본으로 망명한 이래 5년 동안이나「불안정한」지위에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보면 단순한「국제관행」에 따른 인도상의문제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실제 지난 5년 동안 북한의「인질외교」에 발목을 붙잡혀왔다.
북한은 민씨가 남포항에서 일본화물선 후지산 호에 잠입, 일본으로 망명하자 재 입항한 후지산 호 선원 5명을 억류, 민씨와의 교환을 요구했다.
일본정부는 자국선원의 송환을 위해 북한과 접촉, 84년 2월 억류중인 5명 가운데 3명을 송환 받았다. 그러나 나머지 2명에 대한 더 이상의 석방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지난해 11월 2일 임시수용소에 4년간 수용해왔던 민씨를「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에 따라 일단 가석방했다.
당시 일본이 민씨의 망명요청을 즉각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남북한에 대한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다고 해도 이제 와서 일본정부가 단안을 내린 것은 뒤늦은 조치인 동시에 또다시 정치적 포석을 시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은 한국이 북방정책을 가속화하면서 7·7선언을 발표하자 이를 신호로 한반도주변 관계국보다 한발 앞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성사시킨다는 계획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일본의 이 같은 노력은「다케시타」 수상의 대북 관계 정상화 촉진발언과 서울올림픽 개막전날을 맞추어 KAL기 테러사건으로 인한 대북 제재조치를 하게 한 사실을 통해 짐작할 수 있으며 일본의 사회당과 중국 등 제3국도 대북 직접 대화를 위한 통로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 측 제안한 6개 관계국 회담을 반대하면서도 유독 일본을 지칭하여 역사·정치적 관계에서 배제되어야할 유일한 국가로 지정할 만큼 일본에 대해 냉정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일본사회당을 통해 북한대표단을 일본에 보내기로 약속했으나 최근 이를 연기시킴으로써 일본의 대북 접근정책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북한의 의중을 타진할 필요가 절실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북한이 대내적으로는 경제치중, 대외적으로는 점진적 개방을 취해나갈 것으로 판단, 북한이 현실적으로 일본의 협조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따라서 일본은 이번 민씨에 대한 조처를 통해 북한에 충격요법을 취함으로써 반응을 기다리는 한편 대북 접촉이 본격화하기 전에 북한의「압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고 하겠다.
현재 북한은 내년 1월말 개최되는 사회당의 전당대회에 노동당의 고위 당직자를 보낼 것으로 알려졌는데 북한이 일본에 누구를 보내느냐에 따라 이번 조치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동경=최철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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