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괜시리’ 울적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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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절기상으로도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백로(白露)가 지났다. 가을이 오면 주변에서 ‘가을을 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아주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감소하고 기온이 낮아져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이 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선선한 바람이 부니 괜시리 쓸쓸해지려고 한다” “가을이 오면 괜시리 가슴이 울렁거린다” 등과 같이 가을이 가져올 헛헛함을 염려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까닭이나 실속 없이’라는 의미로 ‘괜시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괜스레’가 바른말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괜스레 서글퍼진다” 등처럼 사용해야 한다. ‘괜시리’는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괜스레’와 비슷한 뜻으로 ‘공연스레’가 있다. ‘공연스레’ 역시 ‘공연시리’로 적기 십상이다. “공연시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처럼 쓰는 경우가 있으나 바른말이 아니므로 ‘공연스레’로 고쳐야 한다.

‘갑작시리’도 ‘갑작스레’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다. “주위가 갑작시리 조용해졌다”와 같이 쓰는 예가 있으나 ‘갑작스레’로 바꾸어야 한다.

물건 등이 크거나 무거워 다루기 거북하고 주체스럽다는 의미로 쓰이는 ‘거추장시리’도 마찬가지다. “거추장시리 뭐 이리 무거운 짐을 챙겼니”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바른말이 아니므로 ‘거추장스레’로 고쳐야 한다.

이 밖에도 “휴대전화가 요란시리 울린다” “다정시리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둘이 진짜 사귀나 보다”처럼 특히 입말에서 ‘-시리’를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괜스레’ ‘공연스레’와 같이 대부분 ‘-스레’로 고쳐 적어야 한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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