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정책 대결 판 깨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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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아니 그 전부터 출마의 뜻을 품고 전술적인 의원직 사퇴, 전략적인 광고 출연 등 의심이 가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15일 하루 동안 쏟아낸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다. 앞서 여당은 12일 오 후보를 서울중앙지검과 중앙선관위에 고발했다. 오 후보의 정수기 광고가 지난달 7일까지 방영된 것은 선거일 90일 전까지 선거 출마 공직 후보자나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의 광고 출연을 금지한 선거법 93조에 위반된다는 이유였다. 고발 이후에도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여당의 동어반복성 공세에 제3자인 민주노동당이 나섰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은 15일 "고발했으면 선관위 판단을 기다릴 일이지 선거캠프에서 매일 정수기를 들고 나와서 상대편 선거법 위반 운운하는 게 과연 서울 시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강금실 후보 캠프는 행복주식회사를 차리겠다더니 정수기 주식회사를 차린 모양"이라며 비꼬기도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정책'은 사라지고 '광고 논쟁'이 그 자리를 메운 모양새다. 이렇듯 서울시장 선거가 비방전으로 흐른 데는 한나라당의 책임도 크다.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서자 ▶강 후보가 대표로 있던 법무법인 지평의 과다 수임.세금 축소 의혹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와의 유착 의혹 등을 제기한 장본인이 한나라당이다. 불과 한 달 전 얘기다. 당시 "이것은 폭로나 흑색선전이 아닌 진실 규명작업"이라던 한나라당의 주장은 지금 열린우리당에서 그대로 복사돼 활용된다.

중앙선관위에는 '좋은 지방자치는 좋은 지방선거가 만들어 낸다. 우리는 5.31 지방선거가 건강한 경쟁 속에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내용의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협약문이 보관돼 있다. 3월 16일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등 5개 정당 대표가 서명한 문서다. 사료(史料) 가치가 있어 영구 보관될 이 문서에 담긴 내용들을 정치인들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강주안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