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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부부의 '권리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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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성균관대 최고경영자과정 강의를 듣고 있는 변강 한국전력공사 전무 부부. 작은 사진은 조태원.최환선씨 부부의 결혼 30주년 기념 리마인드웨딩 모습.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둘(2)이 하나(1)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자'는 뜻에서 21일이랍니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가정생활의 최고 덕목은 '효'였습니다. 그러다 곧이어 자녀가 가족 중심의 자리를 꿰차 버렸으니 부부는 이래저래 뒷전이었죠.

하지만 끝까지 내 옆에 있어줄 내 짝은 누가 뭐래도 내 남편, 내 아내 아닐까요. 부부가 화목해야 청소년 문제.노인문제 등 각종 사회 문제도 풀어내기가 수월할 겁니다. 다행히 이젠 세상도 그런 자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2003년 12월엔 '5.21 부부의 날 국가 기념일'제정 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또 부부가 함께할 거리도 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그 새로운 문화의 현장을 들여다봅니다.

# 공부도 함께, 인맥도 함께

4일 오후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이날 강좌는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의 '건강관리의 원칙'과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의 '좋은 펀드는 어떻게 고르는가'. 그런데 강의실 모습이 좀 이상하다. 100여 명의 중년 부부가 좌석을 메웠다. 정장에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앉아 있는 다른 최고경영자과정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성균관대는 올해부터 최고경영자과정을 '부부특강'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영대학원장 장영광 교수는 "자산 관리나 건강 관리 등 최고경영자라면 알아둬야 할 정보를 부부가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 최고경영자과정의 목적 중 하나인 인맥 관리도 부부 단위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 그래서 부부 단위로 즐길 수 있는 골프와 다도, 미술관 관람 등도 커리큘럼에 포함시켰다.

수업을 듣고 있는 장세양(신영증권 전무.48).서효은(주부.48)씨 부부는 "외식이나 쇼핑 외에는 부부가 밖에서 같이 할 만한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대학 캠퍼스에서 함께 강의를 들으니 젊어지는 느낌"이라며 만족스러워 했다.

# 가수 팬클럽도 함께

제주도 북제주군에 사는 마흔두 살 주부 '피요나'(실명 공개를 꺼려 팬클럽 닉네임으로 대신한다)씨. 지난해 12월엔 남편 '황기자'(45.닉네임.사업)씨와 함께 대만에 가서 가수 비의 공연을 보고 왔다. 다음달 일본에서 열릴 비의 팬미팅 행사에 부부가 함께 참가할 계획이다. 두 사람은 비의 팬클럽 '비나무'(cafe.daum.net/benamoo) 에서 활동하고 있다. 먼저 비의 열렬 팬이 된 '피요나'씨를 따라 남편도 발을 들여놨다.

"이젠 남편도 지훈이 팬이에요. '형부, 형부'하며 따르는 팬클럽 다른 회원들과도 친해졌고요. 같이 콘서트 가고, 음악 듣고, 신문이나 잡지에 난 기사 보고…. 남편이랑 서로 얻은 정보를 나누고 감상을 주고받느라 대화할 소재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피요나'씨는 "혼자 팬일 때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말한다. 남편 '황기자'씨도 "몸이 약한 아내가 지훈이 덕분에 활기차져서 나도 좋다"고 말했다.

# 같이 춤 추기엔 부부가 최고

배드민턴이나 등산.인라인스케이트 등 부부의 공통된 취미는 부부의 사랑을 유지하고 키우는 데 가장 좋은 촉매 역할을 한다. 인천 검안동에 사는 주종은(43.자영업).류미영(40)씨 부부는 한 달 전부터 함께 댄스스포츠를 배운다. "요즘엔 부부동반 모임도 많은데 그동안 우리 부부는 특별한 장기가 없어 뒷전에 밀려나 있기 일쑤였다"는 류씨. "우리도 함께 즐기고 보여줄 수 있는 장기를 만들자는 뜻에서 남편을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주변에 부부스포츠댄스 강좌를 운영하는 문화센터도 많지만 남편이 퇴근한 후라야 시간을 낼 수 있는 류씨 부부에게는 그림의 떡. 각각 월 20만원씩의 수강료를 내는 부담을 감수하고 동네 학원을 찾아가 오후 9시부터 주3회 개인 레슨을 받기로 했다.

류씨는 "댄스스포츠를 배우면서 남편과 더 친해지고 대화도 늘었다"며 "초.중학생인 두 딸도 자기들도 배우고 싶다고 한다"며 즐거워했다.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상현댄스스쿨' 심미경 분원장은 "집에서도 틈만 나면 부부가 함께 스텝 연습을 해와 느는 속도가 빠르다"며 "여성 혼자 다니는 단체반 수강생 중에서도 부부 수강생들을 보고 '남편과 같이하면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연인 못잖은 부부 이벤트

부부끼리의 이벤트가 활성화되면서 결혼기념일 선물.이벤트 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결혼기념일 닷컴'(www.giftsos.co.kr) 이민화 실장은 "5년 전만 해도 꽃바구니 같은 남편들의 '때우기식' 선물이 많이 팔렸는데 요즘엔 정성이 들어간 품목이 인기"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편지 글만 해도 예전에는 업체에서 제공하는 예문에 사람 이름만 바꿔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것. 심지어 배우자에게 전하는 감사장을 공짜로 끼워준다고 했는데도 '필요 없음'이라고 표시하는 남편들이 60%에 달했단다.

이 실장은 "요즘엔 장문의 편지를 준비하는 남편도 많다"며 "또 결혼기념일 선물을 준비하는 연령대도 과거엔 대부분 결혼 10년차 이하였는데 최근엔 20~30년차에 해당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연예인들의 단골 이벤트였던 리마인드 웨딩도 일반인들에게 이젠 낯선 행사가 아니다. 리마인드 웨딩 전문스튜디오인 '씨에프리마인드웨딩'(www.weddingagain.co.kr) 방극종 팀장은 "금혼식.은혼식 등을 맞아 자녀들의 강권에 의해 리마인드 웨딩을 치르는 부부들은 몹시 쑥스러워하는 데 비해 자발적으로 찾아온 10년차 정도의 젊은 부부들은 시키지 않았는데도 사진 촬영 후 케이크 자르기, 편지 읽기 등의 이벤트를 벌이면서 자신들만의 감동적인 시간을 갖곤 한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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