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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연구기관 파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마침내 화이트칼라 노조의 첫 번째 연대 파업이 시작되었다. KDI(한국개발연구원), KAIST(한국과학기술원), KIET(한국산업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 국가의 중추적 연구기능을 담당하면서 막대한 정부예산을 써왔던 이들 4개 단체가 14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또 각기 다른 분야에서 각기 다른 연구에 종사하는 20개 연구소가 쟁의신고를 했거나 파업 직전에 돌입할 기세에 있다.
이들의 공통된 요구사항은 ①연구의 자율성 보장 ②연구소 내 비민주적 제도 철폐③처우개선 등으로 요약된다.
①항의 요구는 비록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쓰지만 「정부를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국민을 위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항의 요구는 정부가 연구소를 규제할 수 있는 현재의 이사진 구성재편과 안정적 연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재원확보를 통해 정치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사회 공익기관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③항의 요구는 연구기관이 박사학위위주의 운영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평 연구원들은 처우 자체도 떨어지고 극도의 소외감을 느끼고 있으며 내년도 임금인상 폭을 3%로 확정해 연구원들의 근무의욕을 극도로 악화시켰다는데 있다.
사태의 핵심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와 연구원간의 소외를 격화시키는 임금체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로 좁혀볼 수 있다.
조작된 연구, 허위에 찬 연구를 토대로 한 정부의 홍보 위주의 연구가 지난 세월 있었다는 노조 쪽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상시적 판단에 근거를 두고 볼 때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라면 정부의 정책수립에 필요한 조사·연구, 그리고 문제점 제기가 동시에 이뤄져야할 것이고 정부는 연구원의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정책의 방향설정과 변경을 해야됨이 마땅할 것이다. 이것이 곧 정부를 위한 연구이고 국민을 위한 연구가 된다. 정부를 부도덕한 존재, 사악한 존재로 보았던 지난 시절에 연구원들의 이러한 자율적 연구 요구가 대두되었다면 더욱 값진 타당성을 지녔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를 타개할 존재로 보지 않는 한의 정상적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위상은 정부정책결정을 위한 연구 또는 문제제기에 모든 기능이 맞춰져야 될 것이고, 그 조사와 연구활동은 연구원들의 엄정한 객관적 연구활동을 거쳐 수행되어야한다.
그 다음 지적될 사항은 연구원의 급료체계다. 70년대 「해외두뇌유치」라는 정책으로 수많은 재외 한국인고급인력을 유치해오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실정과 오늘의 형편은 많이 달라졌다. 그 여파로 남아있는 해외박사 파격우대는 이제 지양되어도 좋을 정도로 국내 인력의 수준이 높아졌고, 또 연구행위 자체가 1명의 수석연구원 기여도보다는 연구원 전체가 참여해야하는 공동연구 성격을 떠는 흐름에 따라 연구원 상호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임금체계는 시정되어야 한다.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연구기관의 민주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왜 각기 다른 연구종사자들이 연계투쟁을 벌이고, 이것을 단순한 연구원 차원에서가 아닌 화이트칼라 노조의 극단적인 행동양식으로 과시까지 하는 형태로 발전시켰느냐에 있다.
문제를 문제로서 풀지 않고 집단행동으로 확산하려고만 들면 사회적 갈등은 수습할 길이 없어지게 된다.
수 십억 원의 정부예산, 국민세금을 쓰고 있는 연구단체들이 1년이 가도록 본연의 업무인 연구는 젖혀두고 분쟁과 파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이 또한 국민들이 바라는 연구기관의 위상이 될 수는 없다. 정부의 현명한 대책과 노조축의 사려 깊은 자제가 절실하게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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