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쏜 공공기관 지방이전…"이직하겠다" 6만 직원 멘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공기관 122곳 지방 이전" 거세지는 후폭풍 

이해찬 대표는 지난 4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공기관 122곳을 지방으로 이전하기 위해 당정 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해찬 대표는 지난 4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공기관 122곳을 지방으로 이전하기 위해 당정 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이전 대상이 되는 122개 기관은 적합한 지역을 선정해 옮겨가도록 당정 간에 협의하겠습니다.”

지난 4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했다. 지방이전 대상에 오른 공공기관은 총 122곳. 이들 중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업무 특성상 지방 이전이 어려운 일부 기관은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5일 "이전이 불가능한 기관도 있을 것이고 업무 성격상 이전할 수 없는 곳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122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전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균형발전이 문재인 정부의 이정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노무현 정부가 '국토 균형 발전'을 앞세워 2004년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이 특별법은 “정부가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을 단계적으로 지방으로 이전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까지 한국전력·국민연금공단 등 총 153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지난 2월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2월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한 ‘균형 발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국가균형발전 비전선포식’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국가균형발전 전략이 문재인 정부의 이정표이자 의지”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직원 6만명 '멘붕' 

지난달 강원도 원주시 건강보험공단에서 열린 '2018 공공기관장 워크숍'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강원도 원주시 건강보험공단에서 열린 '2018 공공기관장 워크숍'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제는 해당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부담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국토 균형 발전이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거치며 사실상 중단된 탓에 ‘지방 근무’를 위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이 대표가 언급한 122곳의 공공기관의 직원 수는 총 6만명에 달한다.

2014년 산업은행에 입사한 정모(31)씨는 “부모님과 친척 모두 서울에 계신데 홀로 지방에 내려가 근무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며 “일반 대기업을 고사하고 대학 내내 금융 공공기관을 입사를 준비했는데 이럴 거면 그냥 기업에 취직할 걸 그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김모(33)씨는 “입사 6년차이자 결혼 4년차에 4살 된 아이와 부인만 서울에 남겨놓고 지방에 가느니 차라리 이직을 하는게 나을 것 같다”며 “지난해 무리해서 내 집을 장만해 한창 대출금을 갚아나가고 있는데 부동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답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업무 비효율 등 '부작용' 막을 대안 부재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을 필두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역시 '지방분권 실현'이라는 명분 이면엔 수도권 위주로 과열된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한 정책적 목적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을 필두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역시 '지방분권 실현'이라는 명분 이면엔 수도권 위주로 과열된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한 정책적 목적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정부가 ‘수도권 부동산 투기 과열’ 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공기관이 대거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수도권에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에 대해선 아무런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중 상당수는 간부급 직원들이 수시로 서울 출장을 오가는 탓에 업무처리에 불편을 겪고 있다.

지방이전 대상에 오른 한 공공기관장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계획을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은 없고 ‘대세’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지방 이전에 대한 직원들의 불안과 업무 비효율성 등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대안 마련이 선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