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욱 망백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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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생 70을 무사히 채우기란 예나 지금이나 힘들긴 마찬가지다. 욕심에 어두워지지 않고,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며 70인생을 살기란 옛날보다 오히려 오늘이 더 어려울 것 같다. 자연적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사회적 수명은 거꾸로 줄어든 듯 하지 않은가.
개각 때마다 때묻지 않고 덕망 있는 원로를 찾아 나서지만 결과가 별 무 효과인걸 보면 아직도 인생칠십 고래희의 경지는 마찬가지다.
70은 희, 80세면 질, 90세는 모, 1백은 기가 된다.
서예 한길 인생을 살면서 75세가 되던 해에 주위의 권고에 못 이겨 첫 개인전을 열고 90세가 되던 작년에 질수 기념전을 가진 뒤 91세가 되는 올해 호암 갤러리에서 망백전을 여는 석전 황욱 옹의 인생일기는 자연적 수명에서나 사회적 수명에서도 초인적인 예술가의 정신으로 빛나고있다.
1898년 전북 고창 만석지주 집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22세 때 망국한의 좌절과 갈등을 극복하기 의해 금강산 돈도암에 입산해 필묵생활에 전념했다. 32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해방될 때까지 자하 신위를 사숙하며 예악사어서수의 육례에 전념한다.
특히 그의 활과 거문고 솜씨는 뛰어났다. 71년 전주에서 개인전을 열기 전까지 황 옹은 「유자로서의 넓은 도량과 고담한 은자로서의 품격」을 지닌 우리시대의 마지막 은둔 선비로 남아있었다.
석전의 악필법은 67세부터 시작된다. 회갑을 넘기면서 오른손에 수전증이 왔기 때문이다.
붓을 손바닥으로 거머쥐고 붓의 꼭지부분을 엄지로 곽 눌려 고정시켜 운필하는 그의 독창적 좌수 악필법이 생겨난 것이다. 중풍으로 오른손이 마비되자 좌수서예로 바꾼 검여 유희강의 서법과 함께 신체적 어려움을 정신력과 작가의식으로 극복한 좋은 교훈으로 남는다.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은군의 관조정신이나 행운유수와 같은 탈속의 예술세계는 혼돈과 갈등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현듯 한천의 구름 한 점을 연상케 해준다. 예술의 한 가닥 맑은 빛이 섬광처럼 어두운 사회를 비출 때 그 예술은 더욱 값지고 영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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