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스승과 제자 못 만나는 '스승의 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휴업일이 된 건 힘든 선생님들을 쉬게 해드리자는 취지 때문이 아니었다. 촌지 때문이었다. 스승의 날을 맞아 학부모들이 촌지를 들고 학교로 찾아오고, 그로 인한 잡음을 우려한 교장선생님들이 아예 학교 문을 닫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스승의 날은 '스승과 제자가 만나지 않는 날'이 돼버렸다.

하지만 희망을 보여준 학교들도 있었다. 진짜 스승의 날이 뭔지를 가르쳐준 학교들이 있었다.

경기도 명지외고에선 이날 교사와 학생들이 역할 바꾸기 수업을 했다. '일일교사'를 자원한 학생들이 선생님들과 친구들 앞에서 수업을 했다. 학생은 교사가 되고, 교사는 학생의 자리에 앉아봄으로써 서로를 더 잘 이해하자는 취지였다. 수업이 끝난 뒤 교사들은 모여 '교사 선언문'을 낭독했다. "소외된 학생을 먼저 배려하자" "늘 연구하고 공정하게 평가하자" "학생 하나하나의 장점을 발견해 칭찬하자"는 선생님들의 다짐이다.

경기고는 '장한 어버이'와 '자랑스러운 교사'를 표창했다. 근육이 굳어지는 병을 앓는 1학년 신모(16)군의 어머니와 백혈병을 앓는 이모(17).박모(18)의 어머니가 상을 받았다. 신군의 어머니 양모(45)씨는 "남들은 장애 학생이 은근히 다른 학교로 전학 가기를 바라는데 상까지 주는 선생님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송파공고에선 학생과 교사가 스승의 날 행사 후 축구시합을 했다.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보성고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담임선생님께 꽃을 달아주고 함께 축구경기를 했다.

아현초등학교에선 기념식이 끝난 후 각 교실마다 아이들이 선생님들께 큰절을 했다. 종암중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영화를 봤다.

대구시 달서구 J초등학교 이인희(38) 교사는 이날 혼자 텅 빈 교실에 왔다. 그는 취재를 하던 중앙일보 사진기자에게 "내일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업 준비를 하러 왔다"면서 "스승의 날 휴업을 하려면 차라리 없애버리는 게 낫겠다"고 쓸쓸하게 말했다. 책상 앞에는 어떤 제자가 전날 놓고 간 카네이션 한 송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촌지는 당연히 없어져야 하고, 학부모들에게 스승의 날이 더 이상 괴로운 날이 돼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학교 문을 닫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가슴속에 한 분쯤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이기 때문이다.

이원진 사회부문 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16일자 4면 취재일기 중 명지외고에서 "교사와 선생님들이 역할 바꾸기 수업을 했다"는 표현은 "교사와 학생들이 역할 바꾸기 수업을 했다"는 것의 오기(誤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