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계좌, 前애인이 샅샅이 보고있다…처벌 없는 은행원들의 무단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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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의 전 애인 금융정보를 불법조회한 은행원이 검찰에 송치됐다. [중앙포토]

여친의 전 애인 금융정보를 불법조회한 은행원이 검찰에 송치됐다. [중앙포토]

경기도의 한 은행에서 일하는 30대 은행원 A씨는 지난해 여자친구의 전 남자친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무단으로 전 남자친구의 계좌기록과 거래내역을 조회했다. A씨는 그의 금융자산 규모는 물론 카드 사용 내용을 추적해 최근 위치와 행적까지 알아보는 등 무려 150여 차례에 걸쳐 고객의 동의도 없이 불법으로 금융정보를 조회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여자친구 전 애인 궁금해" "이혼소송에 쓰려" #은행원 등의 고객 계좌 무단 조회 비일비재 #현행법 ‘누설ㆍ유출’은 처벌 ‘조회’는 처벌 불가 #전재수 의원, 무단 조회 처벌하는 법 개정안 발의

서울 용산구의 한 은행 지점장이었던 B씨는 2007년 남동생으로부터 제수씨의 대출금과 계좌내역을 조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동생이 이혼 소송을 준비 중인데 소송과 재산분할에 유리한 자료를 확보하려는 속셈이었다. B씨는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통합고객정보를 조회해 남동생에게 제수씨의 금융거래를 전달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이렇듯 은행원 등 금융회사 종사자가 사적인 이유로 계좌 잔액 및 거래 내역을 조회하는 일이 있지만 이를 처벌할 법적 규제가 미흡하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융회사 종사자가 무단조회한 금융거래내용을 제3자에게 건넸을 경우에는 처벌을 받지만 조회하는 것 자체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실제 대법원은 2011년 이혼을 준비 중인 누나를 위해 매형의 재산규모 및 거래내역 등을 불법을 조회한 은행원에 대해 "누나에게 해당 정보를 건넸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확정했다.

더욱이 고객이 금융회사에 계좌조회기록 내역을 요구해도 금융회사가 이를 거부하면 당사자는 누가 언제 자신의 금융거래를 조회했는지 확인ㆍ감독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국내 4대 은행에 계좌조회기록을 요청한 결과, 하나은행은 내규를 이유로 “당사자라 할지라도 계좌조회기록을 제공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개인정보이기도 하지만 은행의 업무정보이기도 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경우에는 개인정보조회 열람신청서를 받은 뒤 곧바로 조회 기록을 제공했다. 신한은행도 조회기록을 제공했지만 약 한 달이 걸렸다.

금융분쟁 전문가인 정민규 변호사(법무법인 광화)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처음 계좌개설 등 거래를 시작할 때 계약서에 조회에 동의를 받았다는 명분으로 권한을 남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거래를 시작하며 받는 개인정보이용 동의는 포괄적 의미의 동의가 아닌 만큼, 업무 목적이 아닌 사적인 목적으로 개인의 금융정보를 들여다보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도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도 개인의 계좌내역을 마음대로 볼 수 없는데, 금융기관 종사자가 당사자의 동의 없이 거래 내역을 무단으로 조회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며 “개인정보보호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현행법에 대한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이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금융거래정보가 누설됐을 때뿐만 아니라 금융회사 종사자가 고객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금융거래 내역을 조회했을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금융거래실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재수 의원은 “고객의 민감한 금융거래 정보를 금융사 직원이 사적인 목적으로 조회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문재인 정부 금융정책의 핵심 기조이기도 한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도 무분별한 조회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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