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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서 새꿈 펼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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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8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건물 3층의 작은 교실.

학생 다섯명이 로또 복권 신청 용지에 숫자를 골라넣은 뒤 자동 번호 선택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실제 복권에 당첨될 확률을 따져보고 있다.

놀이시간 같지만 실은 로또를 이용해 확률을 배우는 도시형 대안학교 '은평씨앗학교'의 '놀자 수학'시간이다. 자원봉사 교사로 나선 진영선(28.학원 수학강사)씨가 계산을 통해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8백14만분의 1이라는 결론을 보여주자 모두 신기한 표정이다. 신경선(19.가명)양은 "재미삼아 로또를 사보긴 했지만 이렇게 확률이 낮은 줄 몰랐다"며 "수학이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경선이는 실업계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0년 복학생 선배들과 몰려 다니며 폭력사건에 휘말리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3년여를 허송한 뒤 스스로 이곳을 찾았다.

대학에 진학해 어릴 적 꿈이던 유치원 교사가 되기 해서다. 그는 불과 5개월 만에 검정고시 9과목 중 4과목에 합격했을 정도로 공부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도시형 대안학교는 학습.친구 등의 문제로 학교를 그만둔 탈(脫)학교 청소년들이나 가정 형편 때문에 진학을 못한 근로 청소년들에게 배움을 주는 교육기관이다.

은평씨앗학교에서는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청소년 대안학교의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예비학교(프리 스쿨)를 열고 있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어머니와 따로 살면서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 학교에 나오는 별이(19.여.가명), 틀에 박힌 교육이 싫어 이곳을 찾았다는 영진(19.가명)이, 학습 장애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예나(16)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학생 15명이 새로운 교육환경을 체험 중이다.

중학교에 재학 중인 예나는 "학교에서는 수업 내용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여기에서는 이해가 잘 된다"며 대안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이날 오후에는 같은 대안학교인 '스스로넷 미디어스쿨'과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 학생들이 함께 서울 순화동 무용실에서 '셸위댄스'수업을 받았다. 학생과 교사.학부모가 함께 춤을 추는 이 수업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자기 표현력과 협동심을 기르는 게 목표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백형화씨의 지도로 스트레칭에 이어 기본 스텝을 익혔다.

함께 참여한 영진이 엄마(46)는 "아들이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으면 엄마가 힘들어할까봐 한번도 내색하지 못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며 눈물을 보이더라"며 "아들과 의사 소통하는 방법을 내가 몰랐다"고 말했다.

청소년 대안학교들을 지원하고 있는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강영주 팀장은 "지난해 말 현재 학교를 그만둔 10대는 중학생 1만7천여명, 고등학생 4만8천여명 등 모두 6만6천여명에 이르며 이중 30%가 서울 지역 청소년"이라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 대안학교란=공교육의 대안(代案)이 되는 학교란 뜻이다. 중.고교 학력을 인정받는 특성화 대안학교 19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교육부 인가를 받지 않은 실험형 프로그램이나 기관으로 존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생의 자율성과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성, 인성교육 등을 중시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도시형 대안학교는 정규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비인가형이다. 은평씨앗학교는 오는 22일 2학기를 시작하며 학기 시작 뒤에도 언제든지 상담을 통해 입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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