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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교착 상황서 특사카드 … 임종석 고민하다 정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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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가 2일 발표한 대북 특사단의 면면에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에서 특사단을 보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심이 묻어난다. 눈앞의 상대는 북한이지만 머릿속에는 미국의 존재감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특사 파견의 주요 목적은 정상회담의 구체적 일정을 잡는 것으로, 당연히 날짜가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센토사 합의(북·미 정상회담)를 기반으로 포괄적 협의가 진행된다”며 “종전선언,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등에 대한 협의 내용도 들어간다”고 말했다.

1차와 멤버 같은 2차 대북 특사단 #청와대 “북측과 종전선언도 협의” #남북 뿐 아니라 한·미 공조도 방점 #북한에 신속한 비핵화 조치 설득 #북·미 협상 동력 이어가게 유도

청와대는 3월 방북했던 1차 특사단과 구성이 동일한 이유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찬 회동을 하는 등 ‘상호 신뢰’를 이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고민 끝에 결정한 구성”이라며 “북·미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특사단이 과거보다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때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장을 맡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특사단 포함 여부가 관심을 모았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놓고 청와대가 특사 방북을 놓고 진보·보수 간 과거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 3월과 마찬가지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특사단을 이끄는 것은 남북뿐 아니라 한·미 간 공조에도 방점을 둔 결과라는 분석이다. 새로운 인물로 ‘깜짝 카드’를 내기보다는 당시 백악관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직접 설명했던 정 실장을 북한에 다시 보내는 게 한·미 관계에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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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특사단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비핵화 문제에서 북·미 간 신뢰 부족을 해소하는 데 있다. 외교 소식통은 “남북 정상회담 문제만 논의한다면 고위급 회담만 돌려도 되는데 지금 굳이 특사단이 움직이는 것은 문 대통령이 평양에 가기 전 비핵화 문제에서 한번 제대로 상황 정리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취소 이후 급격히 냉각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온도를 다시 높여야 한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한국의 특사단 파견 제안을 반나절 만에 곧바로 수락한 것도 북한 역시 고민이 깊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한 이후 2일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이런 상황에서 방북 특사를 통해 북한을 향해 비핵화 조치의 신속한 이행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북·미 간 협상 동력을 이어가도록 하는 게 청와대가 기대하는 이번 특사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난 3월 특사 방북에 비하면 이번엔 환경이 녹록지는 않다. 당시엔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처음 확인하고 이를 미국에 전달, 북·미 정상회담의 토대를 닦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가 고비를 맞자 최근 판문점 선언 이행과 남북관계 개선에 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9일에도 “북과 남은 외세가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며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다그쳐야 한다”고 했다. 일부 대북 전문가는 이번 특사 방북에서도 북한이 이런 태도로 일관한다면 한국의 입지가 도리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오히려 한·미 공조와 남북관계를 놓고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 수도 있어서다. 그래서 5일 당일치기 방북 특사단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공통된 생각이다.

유지혜·강태화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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