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후진 차량 피하다 떨어져 숨진 남성…운전자 과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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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한 기계식 주차장.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중앙포토]

국내의 한 기계식 주차장.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중앙포토]

지난해 2월, A씨는 부산의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기계식 리프트에 주차해놨던 차를 빼려고 하고 있었다. 리프트 뒤쪽으로 한 남성이 서 있는 것이 보였지만, A씨는 '조금 뒤로 갔다가 다시 나가는 방식으로 문제없이 출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주차장 경비원도 후진하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A씨의 차량은 뒤에 서있던 남성을 치지 않았지만, 남성은 리프트 뒤편 아래층으로 떨어져 숨졌다. 검찰은 이 남성이 A씨의 차를 피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봤다. A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1심에서 A씨는 유죄를 받았다. 부산지법 형사9단독 조민석 판사는 지난 5월 "숙달된 자신의 운전기술만 믿고 후진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비키도록 권유하거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피해자가 놀라지 않도록 속도를 충분히 조정해 출차했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조 판사는 "주차차량 리프트는 경사가 있어 상당히 가속해 진입해야 하므로 가속장치 작동을 조금만 잘못하면 원래 진입하는 부분을 넘어 리프트 뒤쪽까지 진입할 위험이 있다"며 "철재 리프트는 자동차가 진입할 때 큰 소리와 진동이 발생하므로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차량이 후진하면 자신이 서 있는 데까지 오지 않더라도 놀라 본능적으로 뒷걸음치다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조 판사는 "피해자의 과실도 있고 A씨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한 점을 고려한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과실치사는 최고 금고 5년 또는 벌금 2000만원까지 선고할 수 있다. 조 판사는 차가 움직이려는데 리프트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뒤쪽으로 이동한 피해자의 행동은 "위험천만했다"고 봤다.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A씨의 잘못이 없다고 봤다. 항소심을 맡은 부산지법 형사합의2부(부장 최종두)는 지난달 19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차량을 후진한 행위와 피해자의 추락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차량이 후진해 주차장 밖으로 나가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차량 뒤편 주차 리프트로 올라갔다"는 점과 "A씨의 후진 속도는 통상적 수준이었으며, 후진 후 멈춘 상태에서 차량 뒤쪽으로 1.3m의 공간이 있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A씨 차량이 피해자 추락에 직접 영향을 줬는지 구체적인 논단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판결에 반영됐다. 재판부는 도로교통공단이 "A씨가 후방의 사고를 예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결과를 낸 점도 고려했다.

검찰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했다. 사건은 4일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아직 담당 재판부가 지정되지 않은 상태다. A씨의 유무죄는 향후 대법원 판결로 최종 결정된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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