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다가오는데…판문점선언 이행 중간성적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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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간 핵협상에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국제사회의 시선이 9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쏠리고 있다.
4월 27일과 5월 26일 판문점에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째이자 역대 다섯 번째 정상회담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지난 13일 판문점에서 4차 고위급회담을 열고 9월 중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정부는 4ㆍ27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는 협의를 하고 합의를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9월 중’ 정상회담을 통해 6ㆍ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소강 상태인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기대다.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잡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잡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미국이 취소하면서 이런 계획과 기대에 차질이 우려되는 분위기다. 정부 당국자는 “한반도 문제는 한국과 북한, 미국이 함께 끌고 가는 수레바퀴와 같다”며 “어느 한 축이 고장 날 경우 정상적인 궤도 운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 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 진전의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그러나 최근 북·미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어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정부가 북ㆍ미 관계 보다 한발 앞서며 상황을 끌고 가려던 계획이었는데, 북한과 미국이 한 걸음 후퇴하는 상황이어서 간극 좁히기가 우선이 아니냐는 얘기다.

북ㆍ미 관계가 삐걱거리는 와중에 남북 정상회담이 계획돼 있지만 아직 그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9월 9일 북한의 정부수립 70주년 행사 이전에는 어렵지 않겠냐”고 했다. 9월 11일부터 13일까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이 예정돼 있다. 18일에는 유엔 총회가 개막한다. 이런 국제 행사를 피한다면 남북 정상회담은 14~17일 사이가 유력하다.

물론 이런 국제행사에 관계없이 일정을 잡을 수도 있지만, 지금쯤이면 최소한 정상회담 일정은 잡았어야 한다는 게 전직 고위 당국자의 설명이다. 평양에서 이미 두 차례 정상회담했으니 ‘급행’으로 준비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빅 이벤트를 사적인 ‘번개 만남’ 수준으로 할 수는 없지 않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판문점 선언의 이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남북은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과 휴전선 인근의 적대행위 중지,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 아시안게임 공동 출전 등의 성과를 냈다.

그러나 남북 정상이 합의한 6ㆍ15를 비롯한 기념일의 공동행사, 국방장관회담, 서해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 수역 설정, 단계적 군축 등에선 진척이 없었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의 핵심고리로 꼽히는 북한의 비핵화나 남북공동 연락 사무소 개설, 단계적 군축, 남북미 종전선언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를 위해선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미국은 자국민의 북한 여행 금지 기간을 1년 간 연기하는 조치를 내리는 등 오히려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경의선 철로 연결을 위해 북한 지역에 남측 열차를 보내 실태조사를 하려 했지만, 유엔군사령부의 반대로 군사분계선조차 넘지 못했다. 남측의 인원이나 열차, 자동차 등이 휴전선을 넘으려면 유엔사의 동의가 필수인데, 최근 유엔사는 이에 반대입장을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절차상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압박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반대했다는 얘기가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가 8ㆍ15광복절을 기해 남북의 대표부(대사관 격)의 문을 연다는 계획에 따라 사무실을 마련했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북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남북관계의 공전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북한은 이런 결과를 한국이나 미국 정부의 이행의지 때문이라고 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롤러코스터를 되풀이하기 때문에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며 “현재 상황에선 부정적인 기류인 게 분명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남북미가 신뢰를 쌓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도, 열려도 중재자의 역할을 하기 녹록지 않은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묘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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