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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이 집값 올렸나” 역풍 … 대출제한 하루 만에 없던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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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30일 오전 국회에서 이해찬 대표 취임 후 첫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고 민생과 경제 현안 과제 등을 논의했다. 이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낙연 국무총리, 이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참석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30일 오전 국회에서 이해찬 대표 취임 후 첫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고 민생과 경제 현안 과제 등을 논의했다. 이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낙연 국무총리, 이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참석했다. [임현동 기자]

정부가 무주택자에 대해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전세자금 대출 제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1주택자를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대책이 이슈화한 지 하루도 안 돼 사실상 뒤집히게 되면서 애초부터 졸속 대책이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부부 연소득 7000만원 기준 #이르면 내달 시행 앞두고 논란 #금융위 긴급회의 “무주택자 예외” #1주택자도 규제서 제외 검토

금융위원회는 30일 “무주택 가구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 대출 보증을 받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무주택자는 고소득 여부와 관계없이 종전대로 전세보증 및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4월 24일 ‘서민·실수요자 주거 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세보증 이용 대상을 원칙적으로 ‘부부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로 제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세보증 상품 판매 대상을 무주택자나 1주택자로 한정한다는 내용도 대책에 포함했다. 이렇게 되면 부부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초과 가구나 2주택 이상 다주택 보유자는 원칙적으로 전세보증을 받을 수 없게 돼 사실상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금융당국이 주택 가격 안정화 방안의 하나로 전세자금 대출에 대한 일제 점검에 착수하면서 이 대책이 9~10월 시행된다는 사실이 지난 29일 알려지자 실수요자들이 크게 반발했다. 문제 제기가 집중된 건 소득 기준이었다. 인터넷 사이트 등에는 연 소득 7000만원 기준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고 당황한 실수요자들이 은행 창구로 몰려오는 경우도 발생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30일 은행 창구에 와서 ‘앞으로 월세로만 거주하란 말이냐’고 항의하는 고객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혼을 앞둔 허모(34)씨는 “주요 결혼 연령인 30대 초·중반에 연 소득 7000만원, 다시 말해 각각 월 300만원 정도씩 못 벌면 결혼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갑자기 정부가 엉뚱한 정책을 내놓으니 매우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전세보증 요건 강화 방안 및 재검토안

전세보증 요건 강화 방안 및 재검토안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위는 30일 관계 부처들과 재검토 작업에 착수해 먼저 무주택자 제외 방침을 발표했다. 관계 부처들은 1주택자도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전세보증 및 대출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 중이다. 한 관계 부처 관계자는 “예를 들어 1주택자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는데 전세 대출이 안 돼 월세밖에 못 얻게 되면 소비를 줄이게 돼 국가적으로도 도움 될 것이 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80%인 전세보증 비율의 하향 조정 등 조건을 달아 1주택자도 소득과 관계없이  전세보증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원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연 소득 7000만원 기준은 보금자리론 대출 자격 요건을 기계적으로 준용한 것”이라며 “처음부터 ‘7000만원 기준은 너무 낮아서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당정 협의까지 끝난 상황이라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세대출의 부동산 투기 전용 여부에 대한 증거나 통계 자료도 없이 섣부른 정책을 내놓아 애꿎은 전세 세입자들만 반전세나 월세로 쫓겨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코 고소득이라고 할 수 없는 연 소득 7000만원 가구를 잠재적 투기 세력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전세대출을 조이면 서민들이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등 고금리 대출로 몰릴 수밖에 없는 만큼 정책을 원점에서 제대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대책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정부가 집값 상승의 원흉으로 여겼던 고소득·다주택자가 아니라 젊은 중산층 맞벌이 부부들만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인 아마추어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대출 제한 정책 관련 일지

4월 24일
금융위, ‘부부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초과자 전세대출 제한’ 등 내용의
‘서민·실수요자 주거 지원 방안’ 발표

8월 28일
금융위, 전세대출 기준 강화 및
현장점검 방침 발표

8월 29일
대출 제한이 임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실수요자 반발

8월 30일
관계부처들, ‘무주택·1주택자’
소득요건 폐지 등 구체적 재검토 착수

박진석·김태윤·정용환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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