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기독교 교류 "물꼬" 틔었다|글리온 회의서 공동 선언·공동 기도문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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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 기독교회가 북한과의 교류를 위한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남북한 기독교인들은 지난 11월23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글리온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세계 교회 협의회 회의에서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공동 선언」과 「한반도 민족 통일을 위한 공동 기도문」을 합의, 발표했다.
이번 공동 선언 채택은 앞으로 남북한 기독교인간의 교류와 협조의 물꼬를 트는 삽질이었다.
글리온 회의에 참석한 강문규 목사 (대한 YMCA총무·NCC서기)는 『이번 회의에 대표로 온 북한의 기독교 관계자들이 남한에서의 민주화 진전에 대해 호평하면서 7·4공동 성명의 정신에 따라 한반도 통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자며 진지한 대화 자세를 보여 공동 선언·공동 기도문 작성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북한에 1만여명의 기독교 신자와 2백여개의 가정 교회가 있다고 들었다』고 밝히고 『79년께부터 기독교의 존재가 북한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러한 현상은 북한 정권 담당자들이 기독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종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대외 정책에 이롭게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전 북한 기독교인들의 만남에 대해 북한 교회의 한계성을 지적하면서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체제의 차이에 따른 종교 현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인 자세로 상호 접촉의 폭을 넓혀 가려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회의에서 양측은 앞으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남북 기독자 회의를 외국에서 하지 말고 남북한에서 개최하자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져 WCC를 통하지 않는 직접 접촉의 길도 열어놓았다.
글리온 회의는 남북 기독교인들이 한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몇가지 실천적 과제를 정하고 노력할 것을 합의했다.
회의는 1995년을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 매년 8·15 직전 주일을 공동 기도일로 지키고 이날을 위해 공동 기도문을 채택했다. 공동 선언은 1972년 남북한이 합의한 「조국 통일 3대 원칙」인 「자주·평화·민족의 대 단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현재의 양 체제 존속이 보장되는 평화 공존 원칙 위에 통일 노력이 이루어져야한다고 확인했다.
선언은 또 한반도 통일의 주체는 남북의 민중 당사자임을 확인했으며 통일 과정에 방해가 되는 외세 배제를 강조하고 분단 고정화를 지향하는 어떤 정치적 대책이나 제안도 배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선언은 현재의 정전 협정이 평화 협정으로 바뀌어야하며 한반도 전역에 걸친 평화와 안정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남북한 당사자간의 불가침 선언이 채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 기도문은 「한반도 백성에게 소망을 주고 힘을 주어서 정의·평화·통일을 위해 싸울 수 있게 하고 통일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화해와 소망의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람들이 계속 더 많아지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글리온 회의에는 북한에서 고기준 (기독교 연맹 서기장)·이문영 (평양시 교도 연맹 직원)·김운봉 목사 (평양지구)·김남혁 (평신도 지도위원)·염형도 (교도 연맹 국제 부장)·이성봉 (강원도 부위원장)·김희숙 (교도 연맹 국제부 통역) 등 7명이 참석했고 남한에서는 김성수 주교 (NCC회장)·김형태 목사·장기천 목사·이효재 교수 등 11명이 참석했다.
대표들은 WCC를 통해 북한 교회를 위한 기부금 (1만5천 달러)과 『교회사』『실천신학』 『민중 신학』 등 신학 관계 서적도 전달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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