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정치코미디물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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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TV정치코미디물이 크게 늘고 있다.
대중들과의 접촉면적이 가장 넓은 코미디가 민감한 현실문제를 소재로 삼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의식한 것으로 일단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대중들의 관심과 의식을 정확히 파악해 낸 뒤 치밀한 구성을 통해 간과되고 있는 측면을 제시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작가의 문제의식 결핍과 창작력 부족으로 인해 표피적 방식으로 접근, 감각만을 자극하고 있어 심각한 역기능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 27일 방영된 M-TV『일요일밤의 대행진』 「주병진의 미주알 고주알」 코너는 청문회 증인들의 부정직·불성실을 새끼손가락으로 상징(?)하는 극도의 단순성을 내보였다.
또 일해청문회 등에 대한 각계의 반응을 「들어」보겠다고 해놓고 「여권봉투」 「야권봉투」 「사회 각 단체 봉투」를 「손으로 들어」보여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이 코너는 풍자의 필수적 요소인 공격성을 상투적인 말장난과 유치한 인물 흉내로 인해 크게 감소시키고 말았다.
이에 반해 K-2TV『유머 1번지』의 「회장님 우리회장님」코너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절제된 대사로 정치코미디의 진수를 맛보게 해주고 있다.
광주민주화 항쟁을 빗대어 다룬 지난 26일의 경기도 광주 사건 청문회에 등장한 증인은 사건발생에 대해 『당시는 몰랐고 청문회 열리기 4분전에 알았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런 일을 했지만 지금은 「조금」미안한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또 증인의 『그분들을 도울 수 있으면 여러분들이 도와 주십시오』라는 교묘하고 모순된 언변을 통해 증인집단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정치코미디에서 문제의 본질적인 측면보다 감각적인 대사와 동작이 강조될 경우 대중들은 현실의 심각성을 잊고 잘못된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타협할 가능성마저 높다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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