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 길거리 반란의 춤판, 비보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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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힙합에는 집이 없다. 길이 집이다. 길에서 그림 그리고(graffiti), 길에서 음반을 틀고(Djing), 길에서 춤을 춘다. 그것이 비보잉(b-boying)이다. 왜 길에서 그런 것들을 할까? 너무나도 당연히, 그런 것들을 할 집이 없기 때문이다. 길에서는 너도 나도 다 이방인이고 동시에 다 '브라더', 즉 형제다.

주말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근처 공터에 장판 비슷한 걸 깔고 춤을 추는 고등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장비라고 해야 깔개 이외에 출력이 별로 세지 않은 오디오뿐이지만 그들의 춤사위는 근력과 지구력.민첩함.유연함으로 충만하다.

한국 비보잉은 그런 '길 위의 춤판'에서 발원한 게 아닐까 싶다. 비보이들은 리듬을 주체할 수 없는 젊은 몸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길 위에서 그렇게 남김없이 드러나는 몸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비보잉은 몸으로 하는 랩이다. 랩이 멜로디를 버리고 리듬과 톤만을 취한 것은 음악적 테러라고 부를 수 있는데, 비보잉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몸으로 하는 몸에 대한 테러다. 몸의 일상적인 상태, 평범한 상태를 넘어서는 그로테스크한 구부러짐.꺾임.튕김을 보여준다. 그것은 안일한 일상 속에 걸터앉아 있는 권태로운 중산층의 몸에 대한 반란이기도 하다. 그런 몸의 현시는 젊은이들에게 강력한 전파력을 지닌다.

게다가 힙합은 자발적인 문화다. 누가 시켜서 하는 힙합은 없다. 이만큼 완벽한 자발성이 보장되는 문화는 우리 청소년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메시지나 몸짓을 남김없이 과시하는 힙합이 억압된 청소년들의 자기 표현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동아리 문화'도 비보잉의 전파에 한몫했다. 힙합은 성원 간의 가족적 유대를 중시한다. 그러한 패밀리 중심의 힙합 문화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온라인.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네트워킹을 하고 있는 십대들에게 힙합과 비보잉은 중요한 의사소통 창구인 셈이다.

성기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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