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3대3 농구대표팀의 근사했던 '패자부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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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현지시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바스켓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3대3 남자농구 결승전 한국 대 중국 경기에서 연장 승부 끝에 한 점차로 금메달을 내준 한국 대표팀의 안영준이 코트에 앉아 아쉬워하고 있다.[연합뉴스]

26일 오후(현지시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바스켓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3대3 남자농구 결승전 한국 대 중국 경기에서 연장 승부 끝에 한 점차로 금메달을 내준 한국 대표팀의 안영준이 코트에 앉아 아쉬워하고 있다.[연합뉴스]

16년 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때 일이다. 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세팍타크로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 서클 경기라는 세부종목에서다. 5명의 선수가 둥글게 둘러서서 발이나 어깨 등으로 공을 주고받는 경기다. 한국은 세팍타크로 강국 태국을 2위로 밀어내고 ‘깜짝’ 금메달을 땄다. 우승 확정 직후 유재수 감독과 선수들은 감격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5명의 선수가 처음부터 세팍타크로를 했던 건 아니다. 다른 종목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밀려 세팍타크로에 입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중 한 명은 태권도 대표선발전에서 떨어진 뒤 다리가 쭉쭉 올라간다는 이유로 세팍타크로를 하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선발전 승자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반면, 선발전에서 밀린 그는 종목은 달라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했다. 멋진 패자부활전이었던 셈이다.

16년 전 기억을 끌어낸 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3대3 농구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26일 오후(현지시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바스켓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3대3 남자농구 결승전 한국 대 중국 경기에서 양홍석이 슛을 시도하다가 파울을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현지시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바스켓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3대3 남자농구 결승전 한국 대 중국 경기에서 양홍석이 슛을 시도하다가 파울을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영준(23·SK), 김낙현(23·전자랜드), 박인태(23·LG), 양홍석(21·KT)이 팀을 이룬 한국 남자 3대3 농구대표팀은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테니스장 특설코트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중국에 18-19, 1점 차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준결승전이 끝난 뒤 만난 정한신 대표팀 감독은 “우리 애들 관심도 받지 못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꼭 금메달 따서 병역도 해결하고 앞으로 선수 생활도 열심히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원했다.

결승전 초반 한국은 슛 난조로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중반 이후 동점을 만들고 역전을 시켰지만, 막판 체력싸움, 그리고 심판의 다소 석연치 않은 반칙 판정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들 또한 열악한 주변 상황을 딛고 일궈낸 멋진 패자부활전의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3대3 농구 대표선수 4명 모두 프로농구 대형 유망주다. 안영준은 2017~18시즌 신인왕 출신이고, 양홍석은 2017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출신이다. 김낙현은 2017 한국대학농구리그 최우수선수상 수상자고, 박인태도 팀 주전급으로 활약한 신인이다. 그런 그들은 허재 한국 남자 5대5 농구대표팀 감독의 눈에 들지 못했다. 이들은 태극마크를 포기하지 않았다. 3대3 농구팀을 결성해 대표선발전에 도전했고, 당당하게 우승하면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26일 오후(현지시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바스켓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3대3 남자농구 결승전 한국 대 중국 경기에서 양홍석이 슛을 시도하다가 파울을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현지시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바스켓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3대3 남자농구 결승전 한국 대 중국 경기에서 양홍석이 슛을 시도하다가 파울을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대표라고는 해도 5대5 농구대표팀보다 받는 지원은 보잘것없었다. 코치진은  정한신 감독 한 명뿐, 별도의 코치나 전력분석관은 기대할 수 없었다. 경기 후 뭉친 근육을 풀어줄 스태프도 없어 5대5 대표팀 트레이너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게다가 조별리그 마지막 날엔 선수들이 집단 복통에 시달렸다. 잘못된 선수촌 음식 탓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고 3대3 농구 강국을 차례로 격파하고 결승까지 진출했다.

선수들은 은메달을 목에 건 뒤 “후회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라고 입을 모았다.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이라는 수사보다, 이들의 근사한 패자부활전을 묘사할 수 있는 또 다른 말이 없을까.

자카르타=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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