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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는 엄마, 회사에 아이와 출근한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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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서영지의 엄마라서, 아이라서(3)

중앙일보 기자. 아침에 아이와 함께 정신없이 출근하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눈 깜짝할 새에 또 집에 들어가 전투 육아를 펼쳐야 하는 ‘일하는 엄마’다. 마음이 건강하고 공감을 잘하는 엄마와 아이로 함께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아이의 마음이 튼튼해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보겠다는 마음과 같은 처지의 엄마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라는 위로를 건네고픈 마음으로 글을 쓴다. 아이를 키우며 답답하고 힘들던 상황과 그 어려움을 해결했던 방법, 그 일에서 얻은 깨달음과 지혜를 공유하고자 하는 독자의 사연도 받는다. <편집자>

리호 엄마(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사연입니다

지난달 휴가 차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아이와 보트를 타고 가는데 남편한테 의지하고 있는 포즈를 보니 아직 어려서 내가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사진 리호엄마]

지난달 휴가 차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아이와 보트를 타고 가는데 남편한테 의지하고 있는 포즈를 보니 아직 어려서 내가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사진 리호엄마]

저는 다섯살 아들을 키우는 일하던 엄마입니다. 현재는 무급휴직 중이고 한 달 뒤엔 퇴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입니다. 퇴직을 마음먹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4년 전 아이를 낳고 15개월을 모두 쉬었습니다. 이후 9시 출근 6시 퇴근이 보장되는 직장에 감사한 마음으로 복직했습니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에 입소해 8시에 데려다주고 6시 30분에 데려오는 걸 3년 동안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생님이 부모가 오기 전까지 사랑으로 이야기하고 놀아준다고 해도 맨 처음 등원해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제일 늦게 남아 친구들을 배웅해주는 건 아이에게 참으로 슬프고 힘든 일이었나 봅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인지능력이 생기면서 한두 번 “엄마가 일찍 왔으면 좋겠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가끔 하는 투정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따뜻한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시작되던 6월 아침부터 매일같이 “어린이집에 늦게 가고 싶어” “엄마가 일찍 오라고!” 소리 내어 울기를 몇 주째 반복했습니다. 아차 싶은 마음에 심리센터에 가보니 분리불안 초기증세라고 하더군요.

지난 6월 리호가 어린이집 가기 전에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울던 사진. 집에서부터 울고 나와서 지각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심란해도 보낼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기만 했다. [사진 리호엄마]

지난 6월 리호가 어린이집 가기 전에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울던 사진. 집에서부터 울고 나와서 지각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심란해도 보낼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기만 했다. [사진 리호엄마]

30개월을 8시에 어린이집 보내고 뛰어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회사에 가고 6시에 퇴근해서 30분 안에 어린이집에 도착하려고 숨도 안 쉬고 뛰었습니다. 두세달에 한번 회식 외에는 약속도 없이 아들 픽업해 씻기고 먹이고 놀고 남편과 자기 전에 책 읽어주고 늘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줬습니다. 정말 노력했고 또 노력해서 일과 육아 둘 다 잘하고 싶었는데 그 결과가 분리불안 초기증상이라니…. 제가 지금까지 뭘 한 걸까요? 제 사랑이 부족해서 만일까요?

그 뒤로 회사에 무급휴직을 신청했습니다. 평일에 친정엄마 도움을 받을까? 등·하원 이모를 구할까? 남편한테 육아 휴직을 쓰라고 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답은 하나였습니다. 휴직한 동안 제가 아이 친구들과 같은 시간에 등·하원만 해주면 울고 가지 않고 세상 신나게 놀다 오는 우리 아들이기 때문에 방법은 퇴사뿐이더군요. 아이의 웃음을 잃지 않도록 다음 달에 사직서를 쓰러 갑니다.

저는 퇴직하게 되면 경단녀가 되겠지만 노부모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것 없이, 어린이집에 혼자 남을 맞벌이 부부 아이의 쓸쓸한 보육 환경 없이, 회사에 아쉬운 사정하는 일 없이 지내게 되겠죠.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급여가 차감되더라도 10시 출근 5시 퇴근을 보장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토닥토닥’ 같은 마음이에요

처음엔 부러웠다. 메일함에 들어온 사연을 읽으면서 아이를 위해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다. 다음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유가 뭐였든 아이가 좀 더 커서 엄마 손이 덜 필요하게 되면 그냥 일할 걸 그랬나 싶은 후회도 밀려올 수 있는데 그런 두려움을 떨치고 퇴사할 용기를 냈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그다음엔 불안해졌다. ‘우리 아이도 이달부터 자주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우는데…. 분리불안 초기증세는 아니겠지?’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맞벌이 부부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맞벌이 부부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발단은 어린이집 여름 방학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2주 동안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통합 반을 운영했다. 첫 일주일은 괜찮았는데 둘째 주가 되면서부터 “나 어린이집 안 가고 싶어”라며 투정부리기 시작했다. 잘 다니다 왜 그럴까 싶었다.

하루는 등원할 때 등원 시간을 적는 칸을 보니 이번 주에 안 나오는 아이들 이름에 빗금이 그어져 있었다. 반 혹은 반 이상이 그 기간 휴가를 갔던 것 같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반 아이들이 안 나오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휴가 간 것 같고…. 본인은 쉬지 않고 매일 나가는 게 속상했나 보다.

지난주부터는 저녁부터 자기 전까지 간헐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방학이라서 친구들이 많이 안 나와서 속상했구나”라고 하니 “나도 방학하고 싶어. 친구들도 없어. 나만 방학 안 하고”라며 운다. “나도 엄마랑 있을래~ 나만 이모가 데리러 오고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오고” 하며 서럽게 흐느낀다. 그 말과 울음이 비수로 날아와 꽂힌다.

그러다 급기야 어느 날은 두세 시간 동안 울었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시터 이모랑 어린이집 마치고 좋아하는 키즈카페에 다녀오라고 해도 엄마랑 있겠다고 막무가내다. 자고 일어나면 까먹겠지 싶어 겨우 달래서 재웠다. 몇 분 전 잠든 아이의 한쪽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이 뒤늦게 흘러내리는 바람에 덩달아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았다.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려면 뭘 해야 하지?’ ‘자격증을 따야 할까?’ ‘아이 있는 엄마, 아빠는 월급을 줄여서라도 5시에 퇴근할 수 있게 하면 얼마나 좋아.’ ‘초등학생을 3시까지 학교에 묶어둘 게 아니라 부모를 일찍 퇴근시켜야지 정부는 뭐하는 거야?’ 잠든 아이 옆에서 구인·구직 사이트를 한참 훑어보다 새벽에 잠들었다.

엄마 따라 회사에 출근해 맞은편 책상에 자리잡은 아이는 종일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놀이를 하며 한 자리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사진 서영지]

엄마 따라 회사에 출근해 맞은편 책상에 자리잡은 아이는 종일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놀이를 하며 한 자리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사진 서영지]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 어린이집 가야지~” 하니 안 간다며 울면서 깬다. 더는 설득하기가 어려워 팀원 과반이 휴가 중인 틈을 타 팀에 사정을 얘기하고 내 앞 빈 책상에 앉혀두기로 했다. 팀원들에겐 너무나 미안했지만, 아이가 저렇게 서럽게 우는 걸 외면하기가 더 힘들었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니 입도 뻥끗하면 안 된다. 책상에 앉아있기 힘들고 심심하다고 엄마한테 얘기하면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테니 바로 얘기하라”고 몇 번이고 단단히 일렀다. 평소에는 다리 아프다, 졸리다, 안으라, 업으라 하던 아이가 보채지도 않고 계단도 혼자 걸어 내려간다.

솔직히 회사에 같이 가도 엄마는 일만 하고 본인은 찍소리도 못 내고 있으면 한두 시간이면 포기하고 어린이집에 간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그날따라 일이 많아 평소보다 늦게 퇴근했는데 정말 한 번도 보채지 않고 그림 그리고 색칠하며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중간에 “장난감을 좀 더 가져올걸” 하길래 이때다 싶어 “심심하면 어린이집 데려다줄까?” 물어도 “아니야, 괜찮아” 하며 버텼다. 점심시간에 잠시 나들이를 하긴 했지만, 아이가 온종일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대견하기도 하면서 짠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직 낮잠을 자는 아이는 어린이집 낮잠 시간이 되자 졸리다며 내 옆으로 왔다. 남는 의자를 붙여놓고 자라고 했더니 바로 잠들었다. [사진 서영지]

어린이집에서 아직 낮잠을 자는 아이는 어린이집 낮잠 시간이 되자 졸리다며 내 옆으로 왔다. 남는 의자를 붙여놓고 자라고 했더니 바로 잠들었다. [사진 서영지]

퇴근 무렵엔 “이제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하며 기뻐한다. “오늘 힘들고 심심했지? 내일은 어린이집 가자” 하니 “응”이라고 순순히 대답한다. 물론 그날 밤에도 또 안 간다고 울긴 했지만, 엄마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게 돼서일까? 아니면 다음 날 어린이집에서 아쿠아리움 견학이 예정돼있어서였을까? 일하고 와서 신나게 놀아주겠다고 약속하니 금방 울음을 그쳤다.

대신 조건을 단다. “내일은 엄마가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와.” “……. 노력해 볼게.”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잠이 든다.

‘온종일 지루하고 앉아있기 힘들어도 엄마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더 좋은 거였구나. 없는 시간도 더 내고, 좀 더 마음을 담아 놀아줘야겠다’ 생각하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잠을 청한다.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도움말: 최양숙 다움상담코칭센터 부원장(연세대 상담학 박사)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심하게 울어요. 왜 그러는 걸까요?
우리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고 떼를 부리고 울면 울지마라 가야 한다 행동 코멘트를 하며 행동을 수정하려고 합니다. 아이 마음속에 움직이는 걸 잘 못 봅니다.

인간은 초기 애착이 아주 중요해서 엄마가 절대로 나를 혼자 두지 않고 언제나 돌아오고 필요할 때 언제나 내 옆에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도 애한테는 미흡할 수 있는 거죠. 밤잠을 못 자면서 돌보는데 아이는 왜 그럴까 생각할 수 있지만, 애가 떼를 부리거나 우는 건 아이의 기준에는 못 미친다는 신호입니다.

그럼 아이의 욕구를 다 채워주면 잘 자라게 될까요?
인간은 복잡 미묘한 동물이라 환경을 다 맞춰줬다고 다 잘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아이의 생명력, 힘에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위해주고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우선순위가 부모 자신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생각은 일에 가 있는데 아이가 요청하면 해주긴 하지만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으니 건성일 때가 많은 거죠. 아이는 다 알아차립니다. 엄마가 나랑 있어도 충분히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겁니다. 현대인은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데, 이 때문에 부모도 불안하고 아이한테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하는 것이 자녀의 분리불안·애착 장애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수시로 휴대폰 또는 TV를 보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하면서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그만큼 집중하지 못한다. [중앙포토]

우리는 평소에 수시로 휴대폰 또는 TV를 보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하면서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그만큼 집중하지 못한다. [중앙포토]

그럼 아이한테 어떻게 집중해야 하나요?
놀이치료를 하면 휴대폰이나 TV의 방해, 외부인의 방문 없이 일주일에 30분 집중해서 놀라고 합니다. 30분이 무슨 대수냐 하는데 우리는 평소에 아이들한테 그만큼 집중하지 못합니다. 수시로 휴대폰을 보거나 TV를 보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하면서 아이를 돌보죠.

부모부터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안정된 상황에서 아이 고유의 생명력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무리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좋은 것을 많이 사줘도 마음이 분산돼있고 늘 쫓기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우선순위를 귀신같이 압니다.

듣고 보니 30분을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죄책감이 듭니다.
무한정 책임을 지거나 무한정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는 100% 집중하고 다른 건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말에 몇 시간 놀겠다 하면 일 걱정은 내려놓고 아이한테만 집중해야 합니다. 아이가 그런 시간을 가지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예요. 24시간 같이 있으니 훨씬 희생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TV 보고 친구랑 수다 떨고 속으로 다른 걱정 하며 아이랑 놀면 아이는 다 알아차립니다.

사실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실천이 참 어렵네요.
생명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의 생명을 아이들한테 주고 아이들은 그걸 받아 피어나는 거죠.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라 그 생명을 그대로 받아줘야 하는데 엄마들은 아이를 대할 때 의도가 있습니다. 똑똑해야 하고, 공부 잘해야 하고, 사회성이 좋아야 하고…. 타고난 기질을 인정해주지 않고 부모의 의도가 있으면 아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부모 눈에는 이상할지라도 아이 자체를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우리가 아이를 쫓아가 주고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인정해줘야 합니다. 아이를 쫓아가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부모의 의도가 나옵니다. 결심하고 내려놔야 합니다. 우리도 어릴 때 부모가 우리를 이해해주지 못하면 속상했잖아요. 우리도 부모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방식대로 커오지 않았습니까. 그걸 믿고 부모가 힘을 빼야 합니다.

※ 사연을 받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딸로, 며느리로 아이를 키우면서 닥쳤던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냈거나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아이와 관련한 일이라면 어떤 주제라도 좋습니다. 그 이후로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그 사건을 겪으며 느낀 생각과 깨달음, 그로 인한 삶의 변화 등을 공유해주세요. 같은 상황을 겪는 누군가에게는 선배 엄마의 팁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영지 기자의 이메일(vivian@joongang.co.kr)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실 때는 이름연락처꼭 알려주세요. 사진과 사진 설명을 함께 보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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