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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압박, ‘대출’로 막다가 숨진 직원…법원 “업무상 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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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과 사진은 관계 없음) [중앙포토]

(기사 내용과 사진은 관계 없음) [중앙포토]

실적 스트레스를 받다가 보이스피싱 사기까지 당하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영업사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유진현 부장판사)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를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유족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4년 5월 당시 모 음료 회사 지점에서 10년 넘게 영업을 담당해온 A씨는 월말 목표치에 대한 압박을 수시로 받았다.

A씨는 월말 실적 점검을 위해 '가상 판매(가판)'이라는 방법을 썼다.

가상 판매는 실제 판매하지 않은 물품을 서류상 판매한 것처럼 회사에 보고한 뒤 대금을 미수금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서류상 판매 처리된 물품은 별도 보관했다가 회사의 수금 독촉이 이어지면 도매상에 헐값으로 덤핑 판매됐다.

하지만 덤핑 물품을 받은 업자들은 '무자료 거래'라는 약점을 이용해 대금을 떼먹기도 해 영업사원이 떼인 대금을 채워 넣기도 한다.

가상 판매 방법을 이용한 A씨도 월말이면 돈을 빌리거나 금융 대출 등을 받아 차액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러나 2014년 5월 판매대금 200만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A씨는 대부업체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대출금을 이중송금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출금 갚은 걸 깜빡하고 다시 돈을 보낸 것이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본 A씨는 사흘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유족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A씨는 경제적 압박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거절했다.

이에 재판부는 월말 정산이나 목표치 달성 점검이 다가올수록 정신적 스트레스가 급속히 증폭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대부업체에 빚 갚은 걸 잊고 두 차례나 다시 송금할 정도로 정상적인 상황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A씨의 채무는 미수금이나 덤핑 판매 차액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금 융통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고, 사기를 당한 것 역시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전반적인 업무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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